부인과 전문의 윤애원

콜로라도 최초의 한인 여자 산부인과 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윤애원씨(미국명 Alice Sun)는 한인 사회에서 최호숙 산부인과 전문의의 어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콜로라도 한인 사회 최고의 엘리트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97년에 66세의 나이로 은퇴를 하고 나서도 78세인 지금까지도 최호숙 산부인과에서 정기적으로 진료 및 수술을 집도할 정도로 나이가 무색하다. 

닥터 윤은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당시 남한의 모든 의대들은 부산에 모여 임시로 만든 전시 연합대학 의대를 다니다가 현재의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 과정을 하던 중 덜컥 첫 아이가 들어섰다. 할 수 없이 레지던트를 그만두고 집에다 개인 병원을 열고 진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열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져갔고, 고민 끝에 목사인 남편과 상의한 후 혼자 1959년에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당시 4살, 3살, 8개월 된 올망졸망한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홀홀 단신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윤씨는 아이들이 눈에 밟힐 때마다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들이 못 견딜 만큼 보고 싶었지만, 그런 그를 붙잡아준 것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러나 3년을 공부하다가 집안 사정으로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윤씨는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1965년에 미국으로 떠난다.

당시로는 드물게 영문과 교수를 한 윤씨의 어머니로부터 영어를 배웠지만 기초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윤씨의 자녀들은 미국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미국 아이들을 따라잡기 시작해 선생님들이 월반을 시킬 정도로 명석했다. 특히 장녀 호숙씨는 피아노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집에 피아노가 없어 연습을 하지 못했다. 이를 눈여겨 보던 교장선생님이 특별히 강당의 피아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 덕분에 외로울 때마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1959년부터 산부인과 의사로 일을 해왔으니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받은 아이만 수 천명이 넘는다. 그 아이가 자라서 또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을 때도 도와준 적도 많다. 세 쌍둥이를 직접 받았을 때의 감격, 기형아를 받았을 때의 안타까움도 잊을 수가 없는 기억이라고 한다. 

그런 그에게 이민 와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의사 면허 시험을 볼 때였다. 한국에서도 시험이라는 것에 한번도 낙방해본 적이 없었던 윤씨는 미국에서 처음 도전한 의사 면허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던 윤씨는 좌절했다.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가 없어서 공원으로 남편을 불러내 도저히 못하겠다며 울었다. 그러나 남편은 괜찮다, 한번만 더 도전해보자며 그녀를 격려했다. 그리고 아내가 조용히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남편은 휴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일부러 테니스를 치러 나가거나 소풍을 가며 헌신적으로 아내를 외조 했고, 덕분에 두 번째 시험에서 그녀는 당당히 붙을 수 있었다. 윤씨는 결혼을 할 때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세 아이들을 기를 때 정말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길렀다. 의사로서 바쁜 일과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부족하지 않도록 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그녀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자녀들은 모두 훌륭하게 성장해 장녀인 호숙씨는 산부인과, 장남인 호신씨는 대장항문 전문의, 그리고 텍사스에 살고 있는 막내딸은 소아과 의사로 모두 어머니의 뒤를 이어 의료인의 길을 가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에게 신앙은 힘든 이민생활에서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해준 등대와도 같은 것이었다. 조국을 떠나 이곳에서 그녀가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응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이 나라에 살러 왔으니까, 이 나라 법을 지키고 이 나라 사람들의 좋은 점을 배워야겠다는 그의 능동적이고 진실되고 의로운 행동이 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3년전 장녀 최호숙씨 외 11명의 의사들과 함께 북한에서 의료봉사를 하는 등 끊임없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어주고 있는 그녀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빛과 소금이 되어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며 잔잔하고 훈훈한 웃음을 지었다. 진심으로 환자들을 생각하고, 환자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그녀야말로 진정한 명의가 아닐까.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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