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몇 년 동안 칼럼을 쓰면서 도박에 대해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필자 스스로가 관심이 없는 분야이고, 더욱이 여기서 몇 자 긁적인다고 해서 도박 중독 증세가 나아질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의 연예인들이 도박 중독 때문에 연예프로그램이 아니고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도박의 심각성을 새삼 생각하게 됐다. 특히 한국에서는 요즘 방송인 신정환의 필리핀 원정 도박 사건으로 떠들썩하다. 그는 2005년인가 도박혐의로 기소돼 한동안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고, 올해 7월엔 강원 정선 강원랜드에서 1억8천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은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신 씨가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이 벌써 세 번째다. 이렇게 한 번 도박에 빠져들면 자식도,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자신을 망치는 일인 줄 뻔히 알면서 왜 도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지노나 경마를 레저로 생각하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가 있다. 외국인들은 놀이동산에 가는 것처럼 즐기러 카지노를 찾지만, 한인들은 돈을 따려고 달려들다 보니 중독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콜로라도 한인 비즈니스업계는 벌써 몇 년째 불황이라는 단어를 달고 살지만, 카지노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이유에는 한인들의 협조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한국은 언제부터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도박중독 국가가 됐다. 국무총리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도박중독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무려 3백만 명 이라고 하니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6.1%는 영국의 1.9%, 캐나다 1.7%, 오스트레일리아 2.55%와 비교하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 한민족의 피가 덴버 이 곳에서도 적용된 것일까. 주변에서 도박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망라하라면 밤을 샐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일단 100달러만 주머니에 있어도 무조건 그 날은 산에 올라가는 날이라고 정하고, 오후 스케줄을 아예 제쳐 버렸던 한 사람이 있었다. 얼마 전 그 사람은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갔다. 가지고 있던 모텔, 집을 홀랑 날렸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도 페이먼트를 못해 은행에서 가져갔다. 타주에 있는 친척집에 더부살이를 시작한 그이지만, 아직도 카지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내의 신용카드를 훔쳐 약간의 돈을 마련하고, 시계, 반지, 카메라를 잡히면서 카지노를 전전하다가 이제는 아예 알코올 중독자까지 되어버렸다고 한다.

또,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면서도, 여기 저기서 3백 달러, 2백 달러씩을 빌려 카지노를 찾았던 한 여자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도 날리고, 카지노에서 눈 맞은 남자와 바람나서 도망을 쳤다. 남편도, 자식도 버리고 도망갔다가 5년 만에 덴버로 돌아왔다. 주변 시선은 당연히 따갑기만 하다. 여기서 쭉 살면서 이웃에게 못 볼꼴 보여준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일단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하고, 나이 들어서 저렇게 산다고 손가락질 받고,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것이 이제는 덤덤하기까지 하다. 

도박에 중독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중독 과정은 대략 이랬다. 재미 삼아 가끔씩 도박을 시작한다. 흥분을 느낀다. 우연히 대박을 경험한다. 같은 흥분을 얻기 위해 도박 시간이 점점 늘고 거는 돈의 액수가 차차 커진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마시는 술이 한 잔, 두 잔에서 한 병, 두 병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이제는 도박 사실을 주변에 숨기기 시작한다. 빚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에게 무관심해진다. 도박을 그만두고 싶지만 머릿속에서 도박장이 떠나지 않는다. 어제 잃었으니 오늘은 딸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고 나면 어제 땄으니 오늘도 딸 것이라고 다른 계산을 한다. 과거 크게 땄던 경험만 기억하고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 도박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을 가끔 느끼기도 한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증상을 견디기 어려워 또 도박장을 찾는데 그때는 스스로 도박을 그만두기 힘들다.

가족이 반기지 않는 당신, 더 이상 가족에게 의미 없는 당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당신이 되기 전에 그만 두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도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치병도 아니다. 도박 중독은 본인과 가족, 가까운 관계까지 파멸에 빠뜨리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가족들이 도박을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매번 빚을 갚아주고, 잘못을 덮어주는데 이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을 주는 것과 같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당연한 듯이 화투나 카드를 즐기는 습관 또한 도박문화를 확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봐야 한다. 대박을 쫓다가는 반드시 쪽박을 차게 마련이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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