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헵 메디컬 클리닉 박수지 약학박사

창간 4년 특집 이민 7전 8기>

저소득층을 위한 캐헵 메디컬 클리닉의 박수지(68) 약학박사의 인생은 ‘봉사’라는 한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즐겁다는 박씨는 보험이 없는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클리닉 운영을 전반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2005년부터 매년 무료 건강 검진 행사를 개최해 평소 의료보험이 없어 혈압이나 콜레스트롤, 당뇨 검사 같은 간단한 검사조차도 받지 못하는 한인들에게 무료로 검사를 받게 해주는 이로 잘 알려져 있다.  

1942년에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박씨는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은 상태에서 남편과 미국으로 건너왔다. 버지니아주 알링톤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던 의사가 되기 위해 대학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너무나 비싼 학비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할 수 없이 일자리라도 구하려고 하니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무도 고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 공부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에 당시에 살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옆에 누군가가 버리려고 쌓아놓은 잡지 더미를 발견했다. 그러다 우연히 잡지 안에 끼워져 있던 군인 모집 광고를 보게 됐다. “미 육군에 입대하면 대학이 공짜”라고 적힌 이 광고를 보는 순간 눈이 확 떠졌다. 그래서 박씨는 아이 둘을 낳은 34세의 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한다. 그녀가 있었던 군대는 캔사스주 제 1 사단이었고, 2개월의 기본 훈련을 마친 후에 군인들의 월급을 주는 행정부 페이롤 서기 보직을 맡아 복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군대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무거운 군화를 신고 몇 마일씩 뛰어야 했고, 사격 훈련과 지옥 같은 체력 훈련 등도 이를 악물고 해내야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대학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이겨낼 수가 있었다. 제대 후 콜로라도 주립대학 볼더 캠퍼스에 있던 약학대에 들어갔다. 군대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공부가 더 어렵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한 끝에 약학 대학을 졸업하고 Presbyterian / St. Luke Medical Center (PSL) 병원에서 약사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약사로 일을 하면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 팜디라고 불리는 임상약학박사(Doctor of Pharmacy) 공부를 시작했다. 아픈 몸에다 일을 병행해가면서 꾸준히 공부해 6년만에 임상약학박사가 됐다.

그녀는 1977년에 군대에서 맞은 돼지독감 백신의 부작용으로 신경을 다쳤다. 당시 미군들이 새로 개발한 돼지독감 백신을 시험할 대상이 되어 모두 이 백신을 맞았는데, 죽은 사람도 몇 명 있고 박씨처럼 신경을 다쳐 장애인이 된 사람들도 많이 있을 정도로 부작용이 심했다. 백신을 맞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부터 기운도 없고 팔에 힘이 없어 밥숟갈을 뜨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 군 병원을 수 십 번을 들락거리며 원인을 알아봤지만, 의사들도 원인을 알지 못하고 감기로 진단하곤 했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 오른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녀의 증상이 돼지독감 백신의 부작용으로 신경에 손상이 온 것임이 드러났다. 거기다 당시 일하던 병원에서 자궁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신경을 또 잘못 건드려 이번에는 왼쪽 발을 못쓰게 됐다. 걸어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앉아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병원내 테라피 풀장에서 이를 악물고 재활 치료를 하면서 그녀는 죽을 만큼 아파도 병원을 못 찾는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약학 대학을 다닐 때부터 한인 커뮤니티에서 봉사를 해왔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도 모르고,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그냥 병을 키우고 있는 한인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시작한 일이었다. 아픈 한인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성심성의껏 상담도 해주고, 심지어 차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주말에는 이들을 병원까지 데려가고 데리고 오는 일까지 해주었다. 그러다가 2008년 12월 저소득층을 위한 클리닉인 CAHEP (Colorado Asian Health Education Promotion)을 오픈하는데 동참했다. 이 클리닉에서는 의사를 만나 상담하는 비용이 일반 보험회사의 코페이 금액에 해당하는 25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무료로 유방암 검사를 해주고, 각종 검사들을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받을 수 있다. 

박씨는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박씨는 “참된 봉사가 내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씨의 삶은 봉사였고, 그 삶은 덴버 한인사회와 함께 해왔다. 그녀가 살린 목숨은 한 둘이 아니다. 그녀를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어려운 이웃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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