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방문했을 때 신기하고 이국적인 건축물을 구경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별 목적의식 없이 로마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 리스트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그 곳에 갔었다. 당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필자로서는 대성전이라도 성지가 아니라 단순한 관광명소에 불과했었다. 교과서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의 결정판으로 배웠던 성 베드로 성당의 규모와 위엄에 기선이 제압됐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당시는 긴 바지를 입고 성당에 들어가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날 반바지 위에 배낭에서 꺼낸 긴 바지를 겹쳐 입었다. 더웠지만 성당 안의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들을 본다는 생각에 설렜다. 최대 10만 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서면 천장, 벽, 복도 마다 예술의 흔적이 구석구석 묻어 있다. 하루 잠깐 들러 대성전을 구경하고 나온 필자는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당시 즐겁고 설레던 마음으로 베드로 성당을 둘러봤던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 성당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웅장함 뒤에 숨겨진 눈물의 의미를 종교와 역사를 배우면서 늦게나마 깨달았다.  

얼마 전 미국의 한 기자가 살인사건과 관련해 증인들의 실명을 기사화 하는 사건이 있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셰리프국 소속의 한 요원이 멕시칸 갱들에 의해 피살된 내용이었다.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경찰 측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런데 한 기자가 갱단에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들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경찰 노조와 증인 가족 측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실명 공개로 인해 법정 증인들이 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멕시칸 갱단원들에게 ‘처형자 명단’을 넘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명이 공개된 증인 중에는 갱단에서 탈퇴하려던 15세 소년도 있었다. 경찰 측은 도대체 독자들이 증인들의 이름을 반드시 알아야 할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며 앞으로 유사한 갱 단원 보도에 증인들의 안전을 고려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고 이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글을 쓴 신문사 측은 자신들로 인해 증인들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덴버에서도 뒤늦게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일들이 많다. 한인사회의 공공재산이었던 한인회관을 매각한 사건은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한인들이 돈 모아서 마련한 회관이 팔렸으면, 수익금도 한인사회를 위해 사용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더 큰 한인회관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면 회관을 몇 번 판들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한인회’라는 한인사회 대표 이름을 걸고 힘들게 기금을 모았고, 시에서 보조를 받아서 마련한 회관이기에 당연히 한인사회를 위해 다시 사용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공동 재산인 한인회관이 몇몇 사람들의 이기적인 발상으로 공중분해가 되었던 것을 우린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덴버 한인 사회 역사에 오점으로 남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한인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회관 매각을 수수방관했던 잘못, 매각 후에도 회관 행방에 관심을 갖지 못한 잘못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요즘 이러한 불명예스런 역사가 또다시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 멀쩡한 한인회관을 팔아 치운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 기억이 희미해 지기도 전에 노우회관에 리스 사인이 붙었다. 노우회관은 한인사회의 공공재산이다. 일년에 겨우 하루 이틀 정도 한인 사회를 위해 문을 열더니만, 이제는 아예 내 놓았다. 멀쩡한 회관을 끼고 앉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관계자들은 스스로 반성하는 것이 마땅한데, 페이 오프된 공공 재산인 회관을 마치 자신의 개인 집처럼 세를 놓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겠다면서 팔을 걷어 붙였다. 공공의 재산인 회관을 개인 재산인 양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안하무인 격 발상이기도 하지만, 정 한인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용할 의지가 없다면 세를 놓아도 괜찮다. 단, 발생하는 수익금은 한인사회를 위해 사용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인회관 매각 때와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변호사비, 관리비 핑계를 대며 한인사회를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여 걱정스럽다.

협회를 활성화 시켜서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고, 지역인사들에게 후원을 받아 회관을 운영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공공의 의미와 전혀 상관없이 세를 놓아 그 수익금으로 회관 건물을 잡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는 삼척동자도 분별할 수 있는 사실이다. 공공재산에 관심을 가지는 일 또한 동포의 권리이다.  한번 후회로 충분하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한인 회관이 없어졌다.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면 우리 후세들에게 치욕적인 역사를 또 물려줘야 한다. 아들이 “한인회관이 있었다는데, 팔 때 아버지는 뭘 하셨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 부끄러운 역사가 우리 손으로 또다시 쓰여질까 염려스럽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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