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됐던 33명의 광부 전원이 69일간의 사투 끝에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전세계 생중계 됐던 이 장면은 기적의 드라마였다.  매몰 현장에 모여있던 사람들 중에는 광부의 가족뿐만 아니라 대통령도 있었다. 칠레의 대통령은 구출현장을 지키며 구조자들을 한 명씩 한 명씩 감싸 안으며 그들의 생존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우리에게 칠레는 아직까지 후진국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칠레의 기업 이념이 광산을 캐는 것보다 인명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탄광 아래 긴급 대피소를 마련했고, 48시간 마다 먹을 수 있는 통조림과 비스켓, 우유를 비치했다. 이러한 기업 노력과 맞물려 국가적 제도장치도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다. 칠레의 헌법에는 재난 사건 처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칠레 정부는 경찰, 군대, 소방대원 등 각 부문의 지원을 받아  구조과정을 진행했다. 또, 안전하고 과학적인 구조를 위해 미 항공 우주국의 전문가 조직을 초청해 자문을 구했다는  점은 탁월한 위기관리능력으로 평가 받았다. 과학적이고 치밀한 칠레 정부의 민관 협동작전이야 말로 세계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외신들도 이 감동의 드라마를 소개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칠레의 감동스토리가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중국에서 또다시 광산 사고가 발생했다.  광산회사와 당국이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는 사이 매몰자들은 속속 시신으로 발견됐다. 수 십 명이 숨지고 실종되면서 자칭 선진국 대열이라고 자신했던 중국은 칠레와 비교 당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특히 이번 사고는 2008년에도 비슷한 사고로 23명이 숨졌던 곳이기에 더욱 비통하다.  네티즌이 낸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한해 동안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은 840명이 사망했는데, 중국에서 탄광 재난 사고로 죽은 광부는 3069명이나 된다. 다시 말하면, 전쟁 중에 미군의 생존율이 탄광에서 일하는 중국 광부보다 3.5배나 높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이 사회적인 감독체제가 미비한 상황에서 인명을 간과하고, 지방정부의 수입을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개발 사업을 진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탄광 재난은 세계 어디에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인명을 살리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은 미국과 칠레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광산 사고가 빈발하자 미국은 1900년대 초 내무부 광산국이라는 새로운 부처를 신설해 광산사고를 전문적으로 줄였다. 이후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안전기준을 높였다. 중국과 미국의 작년 석탄 생산량을 비교해보면 각각 25억 톤과 10억 톤이었다. 반면 사망자수는 2631명과 34명을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선진국인 미국, 아니 후진국 칠레에 비해서도 얼마나 인권을 소홀히 생각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중국 국민들은 “이번에 구조된 광부들은 칠레에서 태어나서 다행”이라면서 중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면 광부들은 필시 생매장돼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칠레의 구조작업은 중국을 부끄럽게 했고, 많은 중국 노동자들이 광업 재해로 죽어가는 현실을 돌이켜 보게 했다.

칠레 매몰 광부 전원의 무사생환은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한편의 감동 드라마이자 인류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가장 중요한 생환의 원동력은 매몰된 광부들 스스로 지녔던 ‘살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었다. 우리가 지켜본 기적, 막장 속 가늠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도 이들은 오락반장을 정하는 등 역할 분담을 해가며 버텼다. 결국 절망하지 않는 한 살 수 있는 것이다. 혼란과 동요가 있었겠지만 이기심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이타심, 분열보다는 단결에 염두를 두었기에 가능했었다. 심지어 생환 후 인터뷰나 영화 제안을 받게 될 경우 거둘 경제적 이익을 33등분하자는 합의까지 했다니 나중의 갈등까지 사전에 차단하려는 보기 드문 팀워크다.

치치치렐렐렐! 이것은 살아 돌아온 칠레의 광부들과 그들을 애타게 기다렸던 가족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본 전 세계인이 한 목소리로 외친 감격의 구호다. 천길 낭떠러지 앞에서 자신의 밧줄을 양보할 수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리더십이었다. 광부들이 구조 캡슐을 서로 나중에 타겠다며 양보하고 나선 것도 우르수아 감독의 리더십과 무관할 리 없다. 이런 리더십은  크고 작은 모든 조직과 나아가 국가에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막장 하면 드라마에서 불륜을 다룰 때‘막장 드라마’라고 표현하거나 정치인들의 집단 난투극이 벌어질 때‘막장 국회’라고 불리면서 다소 부정적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막장은 탄광용어로써 석탄 같은 지하자원을 캐 낼 때에 갱도의 맨 마지막 부분으로, 앞이 막혀 있는 굴속 끝자락을 막장 이라고 한다. 매몰된 탄광, 절망의 막장을 희망의 막장으로 바꿔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작업반장 우르수아의 솔선수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절망하지 않는 한 우리도 근사하게 해낼 수 있다. 힘들 때일수록 작은 마음 씀씀이가 감동으로 와 닿는다.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급박한 상황은 아니라 할 지라도, 지금 주변에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당신이라면, 그들에게 당신은 우르수아 감독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 함께 ‘치치치렐렐렐’을 외쳐보자.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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