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벌어진 10년간의 지루하고도 소모적인 전쟁을 하룻밤 사이에 끝낸 것은 오디세우스가 만든 목마 때문이었다.
   동서양이 현존하는 영원한 제국, 터키를 여행하기 위해 2주정도의 일정을 잡았다. 당시 한국에는 터키에 대한 여행 가이드 책이 없어 일본어로 된 가이드 책을 들고 터키 구석구석을 더듬더듬 찾아 다녔다. 이스탄불에서 내려 가장 가보고 싶었던, 기괴한 암석 도시 카파도키아를 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카파도키아에서 이틀을 보내고, 고대 로마시대부터 휴양지로 잘 알려진 파무칼레에서 3일을 보냈다. 원래 1박을 계획했지만 너무 좋아서 여행일정을 늘렸던 것도 이 파무칼레라는 도시 때문이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가는 곳마다 터키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이런 황홀함에 휩싸여 발길을 옮겼던 곳이 차낙칼레였다. 그러나 차낙칼레에 도착하면서 필자의 흥분된 터키 여행은 답보 상태를 맞았다.

   무더운 여름, 땀 흘려가면서 도착했던 곳은 트로이 목마가 있는 곳이었다. 단순히 보면 나무로 만든 커다란 말 장난감처럼 보였다. 이것이 어떻게 유명한 유적지의 리스팅에 올라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허접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겠지 라는 의심이 들어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후 후배들이 터키 여행 가이드를 요청해오면 차낙칼레는 가지 말라고 했었다. 목마에 대한 강한 애정과 집착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이 트로이 지역은 오랜 시간 동안 암흑 속에 있다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신화가 아닌 실재했던 사건과 지명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868년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신념으로 연구하던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의 고집 덕분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들 일리아드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풍요롭게 색칠해 주는 신화로서만 존재했다. 한 고고학자의 의지로 인해 지하에서 몇 천 년을 잠자던 신화가 마침내 눈부신 햇빛을 받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

   난공불락의 요새 ‘트로이’를 점령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던 그리스군은 성문을 열지 못해 번번히 공격에 실패하다가 어느 날 밤 대형 목마만을 덩그러니 남겨두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에 트로이군은 남겨진 대형 목마를 전승기념품으로 생각하고 성안에 끌어다 놓고 밤새 축제를 벌이다 골아 떨어졌는데, 이 틈을 이용해 목마 속에 들어있던 그리스의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고대 도시 트로이와 목마에 담긴 이야기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위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트로이 목마를 컴퓨터 해킹을 목적으로 전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지칭하는 것도 이러한 유래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된다. 그 유구한 역사와 의미에 비하면 트로이 목마는 너무나도 허술했다. 하지만 트로이 목마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성장시킨 시와 지역주민, 고고학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허술한 겉모습의 목마에 아랑곳 하지 않고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여기를 찾는다.   

   이듬해 덴마크 코펜하겐을 갔을 때도 트로이 목마와 같은 비슷한 느낌의 명소를 갔었다. 그 유명한 인어공주 상이다. 알다시피 인어공주 상은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를 테마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동화가 왕립극장에서 상연될 때마다 발레리나 엘렌 프리스가 인어 공주역을 맡았고, 이를 계기로 그녀가 인어공주상의 모델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공주상 조각을 맡은 조각가 에릭센의 부인이 된 실화는 잘 알려져 있는 스토리이다. 하지만 인어공주 상은 유명세와는 달리 너무나도 부실했다. 이를 보기 위해 카스텔레트 요새에서 해안을 따라 1시간여 동안을 걸어간 노력이 아까웠을 지경이었다. 80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동상을 보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다는 허탈감은 좀처럼 가시지가 않았다. 그러나 몇 차례나 훼손되어 복구의 과정을 거치고도 사라지지 않고 덴마크의 명소로 꼽히는 이유는 덴마크의 자긍심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이유도, 덴마크에 가면 인어공주 상을 꼭 봐야 한다는 일정을 짜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이 지역을 대표하는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1백 년간 코펜하겐의 바닷가를 지켰던 인어공주는 세계적으로 덴마크의 긍지로 인정을 받아 지난 5월 개막한 상하이 엑스포를 위해 사상 처음으로 해외 출장 길에 올라 화제가 됐었다. 덴마크의 깨끗한 바다에 위치한 인어공주상을 상하이에 전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국에 환경보호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코펜하겐시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냥 의미 없이 지나쳐버릴 수 있는 것들을 세계적인 명소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국가와 국민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 콜로라도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이러한 명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 크고 웅장한 무엇이 아니어도 좋다. 허접한 자태라도 좋다. 우리가 긍지를 가지고, 의미를 불어넣어 준다면 식당도, 미용실도, 마트, 다른 비즈니스도 한인사회의 명소로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이 있다. 이를 위해 우리 업체들을 믿고, 자신 있게 추천하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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