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침울했던 생각들을 버리고 새해를 맞아서인지 기분 좋은 새해를 맞은 듯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오버랩 되면서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는 시기가 정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왕이면 즐겁게 한 살 더 먹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 지난날의 벅찬 감동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도시락을 세 개씩이나 싸가지고 학교를 다니면서 죽으라고 공부해 대학을 갔지만 졸업 후에 취업의 문은 너무 좁았다. 대학 등록금과 도서관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 포기도 못했다. 이런 취업 전선에 신물을 느끼고 있었지만 딱히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3차까지 합격을 하면서 마지막 면접만을 남겨둔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때마다 느꼈던 패배자라는 자격지심은 필자의 자존심에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했고, 대한민국이 원하는 직장인의 기본을 갖추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대학을 다녔는데, 사람을 얕보고 주눅들게 하면서 어이없게 평점을 매기는 인사 위원들의 모습은 납득할 수 없었다.

마치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군림하는 모습이라고 할까. 이렇게 취업전선에서2년을 보내다 지칠 대로 지친 필자는 그렇게 학수고대해 왔던 마지막 면접을 포기했다. 만약 운이 닿아 입사를 하더라고 잘해나갈 자신이 없었고,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집트로 떠났다.

우연하게 합류했던 탐험대의 원정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었다. 한국인, 일본인, 호주, 대만, 캐나다, 영국인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팀에 필자는 뒤늦게 합류를 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속에서 일정을 시작했다. 우리는 이집트 아스완에서 아부심벨을 가기 위해 새벽 3시에 숙소를 출발했다. 한참을 사막을 가로질러 가던 봉고차가 갑자기 서버렸다. 휴게소, 화장실도 보이지 않는 사막 한복판에 남게 된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또렷하게 마주보았다.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 밖으로 나와 사막의 모래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각자 배낭에서 먹을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놓았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초콜릿과 과자 몇 봉지, 껌, 물 두어 병 정도였다. 이를 조금씩 나눠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레 사막저편을 바라보며 일렬로 앉았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지나가는 차를 기다려야 하고, 차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 차가 도와줄 차량을 보낼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서너 시간은 고스란히 모래 위에 앉아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옷을 뒤집어 쓰고 한참을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아, 귀찮다. 또 취업의 문턱에서 허덕여야 하는 것이 싫다. 삶 자체가 귀찮다’ 라는 염세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붉게 변하면서 대원들의 탄성이 들렸다. 덮고 있던 옷을 벗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바다에서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해돋이를 사막에서 볼 줄은 정말 몰랐다. 마치 라이온 킹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지만 실지로는 이보다 훨씬 감동스럽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그 넓디 넓은 사막을 홍색으로 물들였고, 우리의 얼굴과 손과 발까지 한참을 붉게 수놓았다. 이를 보면서 받았던 벅찬 감동은 필자의 생각을 모두 바꾸어놓았다. ‘이왕 사는 것 이렇게 멋지게 살자, 신나게 살자, 그리고 다시 한번 사막의 일출을 보러 오자, 그때는 현실 도피자가 아니라 성공한 사람으로 오자’ 라면서 다짐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감동의 일출 장면은 필자의 앨범 첫 장에 꽂아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막의 감동 이전에도 필자의 생각을 바꾼 또 다른 일이 있었다. 오래전 필자는 발칸반도의 최남단 수니온 곶에 있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 신전 앞에 서서 일출을 본 적이 있다.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었을 대학 초년생 때였다. 기말고사를 뒤로 하고 무작정 그리스로 향했던 그 시절, 남들은 무모하다고 하겠지만 필자에게는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서있는 포세이돈 신전, 그 앞에서 필자는 에게 해를 안고 섰다. 잠잘 곳이 없어서 새벽 일찍부터 그 곳에 가 있었던 필자는 또 한번 감격의 순간을 보았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감격은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날 태양의 정기를 온전히 느꼈던 필자는 ‘나도 저렇게 힘차게 세상을 살겠다’라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 뒤 필자는 한국으로 돌아와 전공을 신문학으로 바꾸면서 인생의 또 다른 창을 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감동과 감격 속에서 살아왔다. 단지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잠시 잊고 살 뿐이다. 필자는 매해 이 맘 때가 되면 그 감동을 끄집어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한다. 동포 여러분도 살면서 가슴 벅찼던 일을 생각하면서, 그 감동을 안고 즐겁게 한 살을 더 먹길 바란다. 그리고 이 해가 끝날 때 즈음, 우리 인생에 가장 감동스러웠던 해가 2011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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