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을 너무 좋아하는 임금님에게 두 명의 사기꾼이 찾아와서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단 이 옷은 어리석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얼른 그 옷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사기꾼들은 큰 돈을 받고 매일매일 옷 만드는 시늉을 합니다. 빨리 이 옷을 입고 싶은 임금님이 어느날 장관을 재촉해서 ‘옷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아보라고’해서 장관이 갔습니다.

사기꾼들은 빈손을 눈앞에 들이대며 ‘장관님 참으로 아름다운 옷이지요?’ 하는데 아무리 봐도 보이는게 없었지만, 어리석은 것을 감추기 위해 장관은 임금님에게 와서 그렇게 보고합니다. ‘임금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옵니다’ 궁금한 임금님은 몇 일후 직접 가보았지만, 임금님 눈에도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그렇지만 임금님도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오! 참으로 아름다운 천이로구나!’ 뒤에 따라온 온 시종들도 합창을 합니다. ‘전하, 정말 훌륭한 색상이옵니다’ 드디어 완성된 옷을 입혀주고 사기꾼들은 떠나고 임금님은 이 새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갑니다. 온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와 정말 임금님 옷은 너무 황홀하다’ 그때 한 어린아이가 막 웃으면서 이렇게 외치지요. ‘하하하하 임금님 빨가벗었네...’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은 온 몸이 오싹 했지만 그럴수록 더 당당한 자세로 걸음을 옮겼고, 시종들은 있지도 않은 옷자락을 들고 계속 그 뒤를 따라갔다고 하는 <안델센>동화 입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이후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려보려고 한 것처럼, 우리 인간의 DNA속에는 이 임금님처럼 있지도 않은 ‘허무의 옷’으로 자신을 가려보려고 끈임없이 애쓰는 본능이 있습니다. 뭔가 나를 가릴 수 있는 껍데기를 찾아 한낱 나뭇잎에 불과한 것으로 입어보지만, 과연 그런 껍데기로 나를 얼마나 가릴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 가릴 수 있을까요? 신앙의 사람 욥은 성경 욥기서1:2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벌거벗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벌거벗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이것이 누구나 인정하는 우리 인간의 실존 아닙니까? 결국 벌거벗고 돌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은 온갖 부귀와 영화와 쾌락속에 살았습니다. 최고급 자가용만 1,400대, 개인 경호원만 12,000명, 처와 첩이 1,000명, 그것도 모자라 시바(이디오피아) 여왕과도 염문을 뿌리고 술람미 여인과도 진한 사랑을 나누고, 하루 먹는 음식만해도 고운 밀가루 30가마, 굵은 밀가루 60가마, 살진 소 30마리, 양 100마리, 그 외 암사슴과 숫사슴과 수많은 살찐 새들, 마치 저 중국 청나라 때의 서태후처럼 관상용음식, 후각용음식, 정말 먹는음식 등을 차려놓고 즐기며 은을 돌같이 흔하게 쓰고, 최고의 재목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로수처럼 흔하게 쓰던 사람으로, 인류역사상 가장 영화롭고 가장 권세있고 가장 사치스럽게 살았던 분입니다.

정말 누구나 ‘솔로몬처럼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흠모하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늙어,(사람은 누구나 늙지요) 머리가 허연 인생말년에 붉게 물든 석양의 정점에서 이렇게 토로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도서1:2-3)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말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여러분! 짧은 인생, 즐기며 사십시요! 쾌락을 누리며 사십시요!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 눈에 보이는대로 사십시오! 단,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분이 지옥에 가서 막 따졌답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부르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좀 미리 경고라도 해 주셨으면 내가 이곳에 오지 않도록 준비하지 않았겠느냐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러시더래요. ‘얘야, 내가 얼마나 많이 경고를 했냐? 너 머리 봐라, 하얗게 꽃이피고 떨어지고 한 거 내가 경고한거야, 그런데 네가 자꾸 염색하면서 가렸지? 너 눈도 구름낀 것처럼 흐릿했지? 다 내가 경고한건데 라식수술로 가렸잖아? 너 이빨봐라, 자꾸 빠지고 맷돌질하기 힘들었지? 그것도 다 내가 경고한건데 네가 틀니로 가리면서 나 기억하지 않았지? 너 얼굴봐라, 주름살로 검버듬으로 경고했지만, 네가 자꾸 땡기고 벗겨내고 하면서 내 경고 무시했잖아?’.....

<막스 에르만>이라는 분이 쓴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라는 詩가 있습니다. ‘한 친구에 대해 난 생각한다/ 어느날 나는 그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10분 쯤 늦어지자 친구는 웨이츠레스를 불러 호통을 쳤다/ 무시를 당한 웨이츠레스는 눈물을 글썽이며 서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지금 그 친구의 무덤앞에 서있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였는데 그는 이제 땅속에 누워있다/ 그런데 그 10분 때문에 그토록 화를 내다니....’ 독자 여러분! 잠시 후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무엇으로 가리시렵니까? 언제까지 가리시렵니까? 무엇때문에 그토록 화를 내십니까? 왜 그렇게 쉬지 못하십니까? 금년도 벌써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 초가을의 입구에서 인생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 장로교회 맹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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