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도 약이 되는 말이 있고 독이 되는 말이 있다. 약이 되는 말은 살리는 말이고 독이 되는 말은 죽이는 말이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18:21)라고 했고 “의인의 입은 생명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10:11)고 했다.

영국의 어떤 가정에 30년간 죽을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살다 간 한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정도 여느 가정처럼 사소한 일로 남편과 아내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하루 종일 밖에서 일에 지쳐 집에 들어왔고 아내가 이런 남편에게 아무 생각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자 남편이 아내를 향해 “그만 떠들고 입 닥치지 못해!”라고 소리쳤다. 이 날 이후 아내는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답답한 남편이 무릎을 꿇고 빌기도 했지만 아내는 일 년, 이 년, 아니 십 년이 지나도 입을 열 줄을 몰랐다. 30년이 지나 딸이 결혼을 하게 되어 어머니로서 결혼 승낙하는 말을 해야 할 처지가 되자 남편은 이제야 아내가 굳게 다문 입을 열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입을 다문 아내는 고개만 약간 끄덕였을 뿐이었다. 이 아내는 30년간 다문 입을 열지 않은 채 결국 무덤으로 내려갔다. 이 가정의 비극은 입술의 3초가 마음의 30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12:18)

약이 되는 말이란 치유가 일어나는 말이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한마디 말에 마음의 상체기가 아물어지는 치료의 힘을 발휘한다. 잠언 기자는 이렇게 교훈하다. “온량한 혀는 곧 생명 나무라도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여기서 온량한 혀(a healing tongue)는 위로와 감동과 치유를 가져다주는 따뜻하고 부러운 말이다. ‘치료하는 혀’라는 것이다. 이 혀를 가지고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는 듣는 자를 위로하고 살려 주고 소망을 가지게 한다. 그래서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는 생명나무가 되는 것이다. 온량한 혀는 영혼의 아픔을 싸매고 치료가 주어지는 언어를 말한다. 슬픈 자에게 위로를,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용기를 심어 주는 것이다.

상처받아 아파하는 자를 감싸 주며 실패한 자를 격려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패려한 혀(a deceitful tongue)는 외곡 되고 거짓된 말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듣는 자를 괴롭히는 말이 된다.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 거기에는 아픈 상처가 남는다. 사람의 의욕을 참담하게 꺾어 놓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천국을 이루기도하고 지옥을 경험하게도 하는 것이다.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쓴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 서두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어디선가 누구에겐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치유의 열매를 맺든지 아니면 상처의 열매를 맺든지.......!

옳은 말, 정당한 말을 했다고 해서 다 약발이 먹히는 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인생의 경륜에서 우러나온 굉장한 말로 야단을 치지만 그 말 한마디가 자녀들에게는 노여움이 되고 상처가 되고 잔소리가 될 수 있다. 약이 되는 말은 말하기 전에 말을 들어야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고 감정을 느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옳은 말을 해 주기 전에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함께 느껴주는 말 한마디가 먼저 필요하다. 이것은 마치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 펌프질을 하기 전에 한 바가지 펌프에 부어 넣는 ‘마중 물’과 같은 것이다.

서로 말을 주고받을 때 끝까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우리들의 대화가 대놓고 화를 내를 것이 되어 버릴 때가 있는데 이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터치하는 ‘마중 물’같은 말의 부재 때문이다. 대게 이럴 때 일어나는 부정적인 반응이 ‘말꼬리 잡기’이다. 그렇게 되면 대화가 사라지고 금세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상황으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말 꼬리를 붙잡는 멍멍개가 되지 말고, 마음을 덮치는 사자가 되라!” 오늘도 내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로 이웃을 치유하고 가정을 살리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아름다운 ‘언어의 약제사’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삼성장로교회 담임목사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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