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는 정말 정신 없는 도시였다. 이 카이로의 중심이 타하리얼 광장이다. 타하리얼 광장 주변에는 이집트 박물관, 버스정류장, 기차역, 호텔 등 주요 건물들이 모여있고, 여기를 중심으로 도로들이 방사선으로 뻗어 있는데, 경찰이 있어도 무용지물이고 차나 사람들 또한 신호에는 관심조차 없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이집트 길을 ‘죽음의 강’이라고 한다. 필자가 이 광장을 가로질러 박물관을 향했을 때가 기억이 난다. 교차로를 찾을 수 없어 무단횡단을 시도했었다. 그러다 중간 즈음 건넜을 때 도로 옆 가로수 아래에서 자고 있던 경찰이 벌떡 일어나 호각을 불면서 나를 세웠다. 나는 무단횡단의 대가로 티켓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경찰은 오히려 양방향의 모든 차들을 정지시켜 필자를 안전하게 건너게 해 주었다. 필자에겐 고마운 일이었지만, 아침부터 널브러져 자고 있던 나태한 경찰의 모습은 이집트의 이미지를 고정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랬던 이집트가 민주화를 열망하면서, 그 타하리얼 광장에 온 국민이 모였다는 소식은 필자를 놀라게 했다. 필자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리가 이집트의 근대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한국 또한 같은 역경을 견디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주의 발상지이자, 서양 문명의 뿌리였던 고대 그리스, 그 철학적 기초를 세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전히 인류의 스승으로 살아있지만 정작 그 후예들은 나라 살림을 파탄 내고, 국민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었다. 이집트는 이미 5천년 전에 문명의 절정기를 누렸다. 그 화려했던 이집트의 역사가 지난 30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 의해 파괴되었고, 이를 더 이상 참지 못한 국민들은 그의 퇴진을 외치면서 거리로 나섰다. 현재 무바라크는 재선을 포기하지만 임기는 마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시위대는 무바라크가 사임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하고,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구국정부 구성을 위한 협의체를 꾸렸다. 이번 주까지 대통령 궁을 비우지 않으면 국민들은 곧 궁으로 쳐들어갈 기세이니 이번 주가 고비일 듯하다.

   이집트 독재정권은 북한과도 관련 있다. 이집트는 북한 정권과 친밀하게 지냈다. 한국과는 1990년대에 수교를 했지만, 북한과는 나세르 집권 때인 1963년에 이미 수교를 맺었다. 두 나라 관계는 거의 군사적 동맹이다. 북한군은 1973년 중동전쟁 때 이집트 편에서 이스라엘 군과 공중전을 벌였는데, 당시 이집트 공군참모총장이 무바라크였다. 그 후 이집트는 북한에 스커드 미사일 여러 발을 주었고, 북한은 이를 개량 양산해 중동에 역수출하고 이익을 챙겼다. 무바라크는 이런 북한의 세습 체제를 배우고 싶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차남 가말을 후계자로 세우는 준비를 몇 년 전부터 해왔다. 2004년 권력이양설을 알아차린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부자를 겨냥한 ‘이제 그만’이라는 국민 운동이 고개를 들었다. 그때 무바라크가 1인 독재와 세습 욕심을 버리고 이집트에 민주주의의 싹을 틔웠더라면 지금 성난 국민 앞에서 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집트의 민중봉기는 평화적 혁명과 비극적 유혈사태의 기로에 섰다. 관건은 이집트 군부와 미국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 전 대통령을 도와 왕정을 전복시킨 이래 군은 이집트 권력의 중추가 돼왔다. 시위 이후 지금까지 군이 보인 태도는 이중적이다. 시위를 유혈 진압해 분노를 산 경찰과 달리 시위대를 적극 저지하지 않아 일단 국민들의 마음을 샀다. 하지만 군부가 완전히 국민의 편에 선 것은 아니다. 주요 군 지휘자들은 무바라크와 함께 텔레비전에 등장해 그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할이 더 주목된다. 미국은 이집트에 연간 13억 달러 규모의 군사지원을 하고 록히드마틴 등 주요 군산복합체가 이집트에 이권을 갖고 있다. 이집트 군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처지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거부하지 못하게 신호를 보내야 한다. 미국으로선 ‘무바라크가 없는 이집트’의 장래가 걱정스러울 수 있다. 그가 이스라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 중동정책의 핵심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의 민주화 열망을 짓누르는 것은 미국의 장기적 이익은 물론 국제사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1980년 광주민주화 운동을 짓밟은 한국 군부를 지지함으로써 민주화를 지연시키고 반미 감정을 촉발했다. 이제 다시 그런 판단을 되풀이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 이집트 타하리얼(Tahrir Sq) 광장에 모인 수 십만 명의 시위대는 민주주의를 애타게 열망하고 있다. 198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해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하리얼’ 광장, 지난 세월 그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름에 걸맞게 이집트의 민주주의를 싹 틔운 곳으로서, 이집트에 존재하는 그 어떤 유적보다도 가치를 인정받는 장소로 후세에 남길 바란다.  민주주의는 때로 혼란스럽고 약해 보이지만, 국민이 자유선거를 통해 선택한 정부는 독재정권보다 훨씬 강하다. 이것을 알아가고 있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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