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이민 와 살면서 한국보다는 미국 스타일을 동경하고, 이를 따르려고 알게 모르게 노력하면서 산다. 청바지와 면 티를 입으면서 프리 스타일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때로는 스테이크의 맛에 매료되어 미국의 음식문화를 즐기고 산다. 시민권 선서를 하면서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의무를 다할 것을 다짐하며, 한국에서의 생활보다는 미국이 훨씬 낫다는 자부심을 갖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미처 버리지 못한 한국에서의 고정관념 때문에 갈등을 겪는 일 또한 흔하다. 

 지난주 필자는 한국에서 이주해온 지 10년 정도 되는 가족들을 만났다. 자녀들은 아직 학생이어서 학교 다니랴 파트타임 직업을 구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주 저녁식사 시간에는 세 남매 중 큰 딸이 표적이 됐다. 우체국을 다니는 남자를 사귄다는 이유에서였다. 먼저 유학 온 큰 딸을 따라온 가족이어서 그런지 큰 딸에 대한 관심이 유독 남다른 집안이다. 유학까지 보내서 공부시킨 딸 자식이 우편 배달부와 사귄다는 말을 듣고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특히나 한국에 있는 고지식한 할아버지에게 손녀 사윗감이 우편 배달부 라는 사실을 절대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강경한 입장이다.

 완강한 그의 아버지 심정도 이해는 한다.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내로라 하는 집안의 사위를 얻고 싶어하는 한국의‘뒤 배경 중심’의 결혼제도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우체국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배경이 아니다. 월급, 휴가, 혜택, 시간활용 면에서 좋은 직업이다. 오히려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 좋다. 그의 아버지는 아직까지 그 옛날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집집마다 걸어 다니면서 편지를 배달하는 우편 배달부 아저씨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란 큰 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 곳 미국에서 말이다. 직업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실감이 났다.

 몇 해 전 한국으로 돌아간 안면 있는 유학생 동생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5년 동안의 유학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지만 한국에 있는 부모의 적극적인 반대로 결국은 헤어졌다. 이유는 남자가 세탁소에서 일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남자친구의 부모가 2개의 세탁소를 가지고 있고 규모도 제법 컸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큰 세탁소를 경영한다고 해도, 세탁소는 세탁소라는 얘기다. 명예퇴직을 당하고 10여 년 째 집에서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 또한 결사반대를 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부모가 되어서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면서 딸자식 덕이나 보겠다는 생각이다. 그 딸도 이러한 아버지가 이해될 리 없다.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자랑할 만한 직업을 가진 사위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그것은 곧 진리가 되어버렸다. 

 이런 편견들은 절대로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 갓 이주해온 한인들뿐 아니라 20여 년을 이곳 미국에서 생활해온 사람들 또한 같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 새 집 장만에 들떠 있는 가족이 생각난다. 한국 사람들의 집 욕심이야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겉치레에 눈이 멀어 지금은 길바닥으로 쫓겨날 지경이다. 씀씀이가 분에 넘치긴 했다. 한 달 네트 수입이 6천 달러 정도에 집 페이먼트가 4천 달러나 되니 허리가 휠 수 밖에 없다. 외관은 멋진 집이다. 아니 외관만 멋지다. 이사를 하는 이유는 모임이 자주 있어 큰 집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겉치레에 신경을 쓰다 보니 자신들 속에는 멍이 들었고 결국은 은행 집을 샀다가 자신의 집도 은행에 넘어갈 판이다. 여가 생활도 일체 하지 못했고, 자동차 페이먼트도 제때 못내 허덕이고, 카드 값을 처리하기 위해 분주했던 모습을 몇 달 전까지 봤었다. 그러면서도‘우리 애 자동차는 현금으로 샀다, 빌딩을 하나 더 사야겠다’는 등의 허영찬 소리만 늘어놓는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이런‘허황된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을 보면서, 거짓말이 습관이 된 듯하다.

 한국에서는 스타벅스 커피가 한창 유행이다. 밥값보다 더 비싼 커피 마시고, 그 빈 컵에 물을 담아서 들고 다녀도 스타벅스 커피 컵은 액세서리 역할을 충분히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 마신 빈 통을 버리지 않고 몇 일 동안 들고 다닐 정도라고 한다. 요즘 한국에서는‘집은 없어도 차는 좋은 차를 타야 한다’는 것도  새로운 풍조라고 한다. 그래서 집 구할 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 차에서 잠을 자고 출근하는 신종 부류가 늘고 있단다. 이렇게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다 보면 허영에 익숙해져 결국 짝퉁 인생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이제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이런 편견과 짝퉁 인생을 과감히 버릴 때가 됐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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