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친지와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얼굴도 비슷하지만 앓고 있는 질병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가족 중에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이 2명 이상일 경우 그 질병에 대해 ‘가족력(家族歷)’이 있다고 한다. 가족력이 있으면 일반적인 경우보다 10~20년 더 빨리 해당 질병이 발생한다. 가족력을 보이는 질환으로는 심장병·우울증·알츠하이머병·유방암·대장암·난소암·당뇨병·고혈압·아토피성 피부염 등이 대표적이다.

 가족력이 있다고 하면 유전질병만 생각하고 불치병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같은 생활습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이 더 많고 대부분 예방이 가능하다.

 우선 유전질병으로는 혈우병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유전질병은 이미 태어날 때 결정돼 있기 때문에 예방하기는 어렵다. 유방암·난소암·대장암의 일부도 유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매우 난처해진다. 예를 들어 BRCA(breast cancer에서 유래)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여성은 평생 동안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56%나 된다. BRC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고 밝혀지는 경우 유방암이 생기기 전에 양측 유방을 절제해 내면 너무나 당연하지만 유방암의 발생 위험을 90% 감소시키고 평균 5년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고려해야 하며 약 반수는 유방암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불필요하게 유방을 절제하게 된다는 게 큰 문제다. 그리고 만약 유방 절제술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유방암이 언제 생길지 몰라 평생을 걱정근심 속에 살 수 있다. 대장암이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 유전자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는 전체 대장암의 1% 미만이지만 이 유전자가 있는 경우에는 거의 100%에서 대장암이 발생한다. 이 유전자가 있다면 대장 전체를 절제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다음으로 유전적 소인(素因)만 있는 경우도 가족력을 흔히 보인다. 위암·심근경색증·고혈압·당뇨병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유전적 소인이 없으면 해당 질병이 안 생기며 유전적 소인이 있더라도 모두 질병이 생기는 게 아니고 어떤 환경에 노출될 때만 해당 질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유전적으로 당뇨병의 소인이 있는 사람이 비만,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이 있으면 당뇨병이 발병하게 된다. 유전질병은 어쩔 수 없지만 단순히 유전적 소인만을 가진 사람은 질병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가족 간에 병원균이 전염돼 발생하는 경우도 가족력을 보이게 된다. 간암은 상당수가 B형 간염에 의해 발생하는데 출산 때 산모의 B형 간염 바이러스가 자녀에게 전염되는 경우 간암의 가족력을 보이게 된다. 위암은 가족끼리 식사를 하면서 침을 통해 나온 헬리코박터균이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파되며 이 헬리코박터균이 위암의 발생 위험을 높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같은 식습관을 하기 때문에 같은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짜게 먹는 식습관, 흡연 습관, 알코올 중독, 운동 부족 등은 부모의 습관이 자녀에게도 전달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결과 고혈압·폐암·지방간 등이 가족력을 보이게 된다. 질병을 앓게 되면 조상 탓을 하고 싶어도 사실 그 대부분은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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