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각국의 국가 정보원들이 곤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 중앙정보국은 최근 이집트 시민혁명의 추이를 오판한 데 이어, 이라크 공격의 명분을 제공했던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제보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사실이 들통났다. 설상가상으로 파키스탄에서 현지인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금돼 있는 미 영사관 직원이 CIA 요원으로 확인되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파키스탄 펀자브주 라호르에서 발생했다. 주 파키스탄 미국 대사관의 라호르 영사관 직원인 레이먼드 데이비스는 오토바이를 타고 자신의 차량으로 다가오는 파키스탄인 두 명을 사살했다. 데이비스는 사건 당시 CIA 요원답지 않은 어설픈 행동으로 화를 자초했다. 반자동 권총을 10발이나 발사했고 달아나는 한 명의 등에도 총 두 발을 쐈다. 이 때문에 신분을 숨기는 것이 생명인 정보요원이 과잉 대응으로 사건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는 체포 당시 차량에 위성 위치 확인시스템과 망원경, 소형 카메라 등 신분이 노출될 장비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한국 국가 정보원의 어수룩한 첩보활동 또한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한 건을 해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 중인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잠입한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서울 롯데호텔 침투 작전’의 정황은 대략 이렇다. 국정원은 이 호텔에 묵기로 한 인도네시아 특사단으로부터 무기협상 자료를 빼내기로 결정했다. 특사단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예방하기 위해 호텔을 비운 사이 국정원 요원 세 명이 숙소에 잠입해 노트북 컴퓨터를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방 주인이 돌아왔다. 방문을 연 인도네시아 특사단원은 작전 중인 요원들과 마주쳤다. 정말 민망한 장면이다. 긴박한 첩보영화로 시작됐다가 코미디 장르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원들은 노트북을 들고 방을 빠져 나와 복도에서 서성인다. 잠시 후 요원 두 명이 객실로 돌아와 노트북을 돌려준다. 수박 서리를 하다 들킨 꼬마가 밭 주인에게 광주리를 건네는 겸연쩍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돌려준 노트북엔 지문 8개가 남아 있고, 지문감식은 현재 진행 중이다.

 첩보영화를 보면 집주인이 돌아오면 작전본부에서 요원에게 돌발 상황을 알리고, 요원은 서둘러 작전을 마무리하거나 그 자리를 빠져 나온다. 아니면 숨어서 때를 기다려야 정상인데, 침입한지 불과 6분 만에 첩보수집 현장을 들켰다니 좀도둑보다 못하다. 한 신문에 실린 국정원 관계자의 변명은 코미디 프로를 보는 듯하다. “특사단이 머물던 1961호 바로 위 2061호가 기관이 쓰던 방이다. 거기 있는 노트북을 가져오라고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했는데, 방을 잘못 알고 특사단 방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이는 국정원에게 국민을 멍청하게 다룬 괘씸죄가 추가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6월 수교 30년 만에 최대 외교위기로까지 치달았던 리비아와의 갈등도 국정원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당시 국정원 직원 리비아 국가원수인 무아마르 카다피의 후계 세습과 관련한 정보를 건드렸다가 역으로 발각돼 추방 조치됐다. 국정원 직원은 카다피의 4남 무타심 빌라가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줄을 대보려고 시도하다가 리비아의 오해를 산 것이다. 이 일로 리비아는 그 국정원 직원을 추방했고, 주한 대사관 격인 리비아 경제협력 대표부 직원 3명을 철수시키고 비자발급도 중단했다. 이에 MB정부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급파해 사태를 무마하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이에 앞선 2008년 러시아에서는 외교관 신분을 가진 국정원 직원이 추방됐다. 러시아가 불법 정보수집을 이유로 외교관 신분을 가진 국가정보원 직원 4명을 잇달아 추방한 사실에 대해 유명환 당시 외교장관은 “공개적으로 답하기 곤란하다”며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그 이듬해인 2009년에도 간첩 혐의를 받은 러시아 주재 한국 외교관이 또 추방됐다.

 1994년 스위스에서도 김정일 가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한국 외교관이 추방당했다. 주 스위스 한국 대사관에 파견된 정보 담당 외교관은 김정일의 부인인 고영희가 김정철과 김정은을 만나는 장면을 망원렌즈 카메라로 몰래 촬영하다 스위스 보안 당국에 발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2010년 5월에는 위장 차량으로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 보고관’을 미행하는 도중 발각됐고, 방송사 직원을 사칭하다 발각되는 등 숱한 탈법 행위와 정체 노출로 국가의 명예에 먹칠을 해왔다. 이제 지나친 ‘성과주의’로 사고뭉치가 된 한국 국정원의 운영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비판대에 오를 양상이다. 더욱이 이런 분위기조차 감지 못하는 것이 국정원의 비애이다. 어설픈 첩보전으로 나라 망신을 자초한 국정원이 사건 해결에 앞서, 사건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를 “국익에 해를 입혔다” 면서 색출하는데 혈안 된 것은 본말이 뒤바뀐 행태이다. 정작 국익에 해를 끼친 것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든 국정원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말, 첩보원다운 활약은 첩보 영화의 대명사인 ‘007작전’이나 한국의 첩보 드라마 ‘아이리스, 아테나’와 같은 스크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편집국장 김현주>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