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목사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기 반 아이들에게 세상에는 사람이 먹는 식량보다 무기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하자 한 여자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고, 똑 같은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했는데 아무도 울지 않더라는 서글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서 무디고 무딘 감성을 지닌 체 무덤덤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서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독일 신학자 프란츠 알트는 만약 인류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엄청난 핵 폭탄이나 심각한 공해 문제 때문이 아니라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또 인류와 지구의 생존에 무감각해져 버려 ‘더 이상 놀라거나 울지 않는 가슴’ 때문일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또 성숙해진다는 것이 더 이상 ‘놀라지 않는 마음과 사고’를 형성시켜 나가는 일과 일치시켜 온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거룩한 희생과 사랑들 앞에서 전율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세계가 당하는 고통과 죽음 앞에서 놀라거나 울지 않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이 점점 더 “힘과 과학과 돈”의 숭배자들이 되어 가면서 거룩한 사랑이라든지, 놀라움이라든지, 이웃의 고통에 민감한 여린 가슴과 마음은 어리석음과 무력함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오늘날 인류와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과학자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환경운동가는 환경 개선의 방법으로, 정치가는 정치적인 방법으로, 종교인은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여러 가지 그럴듯한 처방과 해결책을 내 놓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우리들의 가슴에 싸늘하게 식어가고 상실되어가는 ‘놀라움과 경외감과 눈물 어린 가슴’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풀지 못한 숙제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역사의 어두움과 세상의 불의함의 순환 고리는 결코 끊어 놓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암 투병 중에 있는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5년 만에 산문집을 출간 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보았습니다. 책 제목이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인데 기사 내용 가운데 이 책 ‘여는 글’의 한 부분이 이렇게 인용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은 매일이란 바다의 보물섬에서 보물을 찾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합니다.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주변에 보물 아닌 것이 없는 듯합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이미 놓쳐 버린 보물도 많지만 다시 찾은 보물도 많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아직도 찾아낼 보물이 많음을 새롭게 감사하면서 길을 가는 저에게 하늘은 더 높고 푸릅니다. 처음 보는 이와도 낯설지 않은 친구가 되며, 모르는 이웃과도 하나 되는 꿈을 자주 꿉니다.” 잠깐이지만 이 글을 읽는 순간 어릴 적 소풍가서 ‘보물찾기’하던 추억의 한 페이지가 들추어졌습니다. 소풍 가는 날을 손꼽아 헤아리다 드디어  전날 밤을 설치던 그 행복한 기다림, 숨겨진 보물을 찾기까지의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과, 찾았을 때의 숨 막힐 것 같은 감격스러움, 그리고 찾은 보물 종이 위에 적힌 숫자가 호명되어지고 기대 이상의 상품이 주어졌을 때의 그 놀라움의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이해인 수녀처럼 하루하루를 보물찾기하듯 기다림과 설레임과 감격스러움과 놀라움 속에서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났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모르게 식어지고 상실되어 버린 이런 추억의 감성들을 되살려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묵상한 성경 말씀 중에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이사야 33:6)라는 구절을 보면서 신앙은 하나님을 향한 ‘놀람과 경외감’에서 시작한다고 한 어느 유대 랍비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아는 것 같은데 그 분에 대하여,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하여, 그리고 지금도 내 주변에서 일하고 계시는 그 분의 손길에 대하여 느낌이 없고 놀라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면 그 신앙은 진짜일까라고 자문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봄이 오는 길목에서 봄이 오는 소리를 예민한 가슴으로 듣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다. 한 겨울 언 땅을 뚫고 움 돋아나는 여린 새 순을 바라보며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가슴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마음속에 두껍게 얼어붙은 무덤덤함의 차가운 얼음장을 깨뜨려 버리고 더 놀라고 더 가슴아파하고 더 사랑스러워하고 싶습니다. 어제 밤에 눈이 내려 아직 다 녹지 않은 잔설 위를 힘차게 뚫고 나오는 푸르고 여린 튜울립 잎사귀를 바라보며 곧 다소곳이 피어오를 꽃봉오리 하나가 “나 하나님 손잡고 봄나들이 나왔어요!”하고 인사하는 예쁜 모습을 미리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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