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로 라이터를 발명한 사람은 1906년 오스트리아의 K.A.베르스바흐가 철과 세륨의 합금을 발화석으로 사용하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벤진류를 사용한 오일라이터가 생겨나 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라이터는 방풍형 라이터로 바람에 잘꺼지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이 라이터는 현재까지도 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1933년에 미국 Mr. Blaisdell이 오스트리아 방풍 라이터를 개량해 그당시 최고의 발명품이었던 지퍼의 이름을 따와서 zippo로 이름을 붙이고 라이터를 생산하게 된다. 이것이 현재에도 많은 매니아들이 사용하고 있는 지포라이터이다. 이 라이터도 현재까지 미국 펜실베니아 브래드포드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나오는 일회용 가스라이터는 1946년에 프랑스의 프라미네르사에서 액화석유가스를  연료로 한 부탄라이터(가스라이터)를 고안한 것이다. 역시 현재에도 계속 생산이 되고있다. 한국에는 불티나 라이터로 잘 알려져 있다.

옷핀

 세월 따라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1백50년 동안 꾸준히 전세계적으로 사용되어 온 것 중의 하나가 '안전핀'이다. 우리는 흔히 '옷 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안전핀의 발명에 얽힌 이야기는 돈보다는 애인을 얻은 '로맨스 발명'으로 미국 발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고 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호랑이가 담배를 끊고 조용히 살아가기 시작하던 1840년 12월초, 흰눈송이처럼 청순하고 달덩이처럼 복스러운 처녀 '헤스타'와 열애에 빠진 재치넘치는 청년 '한트'는 어느 날 용기를 내 헤스타의 아버지에게 결혼승낙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하고 만다. 헤스타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 경제력이 없어. 경제력이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가정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는 것이야. 가난은 두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거야. 뻔히 보이는 사실을 앞에 두고 결혼을 승낙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하지만 헤스타를 너무나 사랑하는 한트는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지금 제가 가진 돈은 없지만 저에게는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습니다." 밀고 당기는 승강이 끝에 아버지는 한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좋아 열흘 안에 자네가 1천달러를 벌어온다면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하지. 괜잖은 제안인가?" "좋습니다. 그때 가서 딴 말씀을 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한트는 대답은 당장 했으나 눈앞이 캄캄했다. 당시만 해도 큰집 한 채 값과 맞먹는 1천 달러였으니 그런 어마어마한 돈을 어디서 어떻게 단 열흘만에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밤을 새워 궁리했으나 좀체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스름 새벽녘이 되어서야 한트는 자신의 뛰어난 공작솜씨가 1천달러를 안겨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루 밤낮 동안 깊은 생각을 거듭하던 그의 얼굴에 드디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전력투구할 아이디어를 잡은 것이다. '그래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핀을 만들자.' 그 무렵 미국인들은 부활절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핀으로 리본을 꽂았다. 이것은 견고하지 못해 리본이 잘 떨어질 뿐 아니라 포옹이라도 할라치면 여간 위험한게 아니었다. 한트는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벌써 7일째 밤을 새우고 있었다.

 약속된 열흘째가 되던 날 이른 새벽, 졸음을 이기지 못해 깜박 잠이 든 헤스타는 천둥같은 괴성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것은 한트의 함성이었다. 손에는 안전핀이 들려 있었고... 날이 밝자마자 둘은 손을 잡고 뛰어가 특허출원을 마친 후 곧바로 리본가게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여기에도 벽은 있었다. 영세한 업자들이 물건을 탐내면서도 한결같이 선뜻 1천달러를 내놓지 못하고 주춤했던 것이었다. 둘은 크게 실망해 어깨가 축 늘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때 1천달러를 손에 쥔 리본가게 주인하나가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들어왔다. 대 히트를 확신한 가게 주인이 서둘러 돈을 마련해 온 것이었다. 두 연인은 약속대로 결혼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은 전세계 시장을 독점하며 백만장자가 됐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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