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양반은 과연 존재했을까?

 조선시대의 신분적 특권층이었던 양반에 대한 우리의 지식. 그것의 정확성 여부를 한번이라도 검증해보았는가? 주로 소설이나 사극을 통해 얻은 양반에 관한 지식, 예전부터 그냥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양반에 관한 지식을 실증적으로 검토해보았는가? 결론을 말하자면, 조선 법전에 존재하는 신분 가운데 양반은 없었다. 양인과 노비만이 존재했을 뿐이다.  역사학계에서 연구된 양반의 실체를 정리해보자.

 첫째, 양반이란 신분이 조선시대 법전에 규정된 적은 없다. 경국대전-속대전-대전통편-대전회통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법전에 등장하는 신분은 양인(良人)과 노비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유민과 예속민만 법률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법률상으로는 양반과 일반인을 구분할 수 없다. 법률외적 측면, 즉 사실의 영역에서 양반이란 지배층이 존재했을 뿐이다. 

 둘째, 양반만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과거시험의 문호는 원칙상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1865년 편찬된 법전인 <대전회통> '예전'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전에 나온 법전의 내용도 동일하다.   "3년에 한 번씩 시험을 본다. …… 문과?무과는 통훈대부 이하, 생원?진사시는 통덕랑 이하만이 응시할 수 있다. 수령은 생원시?진사시에 응시할 수 없다." "범죄를 저질러 영구히 임용되지 못하게 된 자, 부정부패를 범한 관리의 아들, 재혼하거나 행실이 부도덕한 여인의 아들과 손자, 서얼 자손은 문과와 생원?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한다."

 여기서 살펴본 <대전회통> '예전' 규정의 어디에도 '상놈은 안 되고 양반만 된다'는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양반만 과거시험을 볼 수 있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학습능력과 경제력과 시간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요건을 갖춘 사람들은 주로 양반 지배층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법제상으로는 양인이면 누구나 다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법률에서 양반이 인정된 것도 아니고 양반만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라면, 양반이란 계층은 대체 어떻게 존재했단 말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셋째, 양반은 지역별로 존재한 사교클럽의 회원 같은 존재였다. 일례로 경상도 안동에서는 이 지역의 특권층이 진솔회(眞率會)라는 사교클럽을 형성했다. 이런 클럽의 회원명단인 향안(鄕案)에 등재된 사람이 이른바 양반이었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연구에 따르면, 양반클럽에 가입하려면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했다. 제1요건은 과거합격자나 대학자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것, 제2요건은 양반가의 생활양식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반가의 생활양식'이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잘 접대하며 학문에 힘쓰고 자기 수양을 쌓는 것을 말한다. 제3요건은 앞의 요건들을 모두 갖춘 가문에서 결혼 배우자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지방에 거주하는 가문의 경우에는, 해당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집단적으로 거주해야만 양반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예컨대, 안동 김씨의 세거지(世居地), 풍양 조씨의 세거지 등등에 거주하는 사람이 양반으로 인정된 것이다.   위와 같은 요건을 구비한 사람들이 각지의 사교클럽에 가입해서 양반 대우를 받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 양반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설이나 사극에 나오는 양반은 실제 역사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도적으로 양반계급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양반만 과거시험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지역별 양반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이 양반으로 인정되었기에, 전국적이고 획일적인 양반의 기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양반이란 것이 절대적이고 명확한 신분이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불명확한 개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양반이고 누가 일반인인지를 가리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소설이나 사극에서는 양반과 상놈이 명확히 구분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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