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목사

 한국에서 목회할 때 5월이 되면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항상 시리즈로 하곤 했습니다. 가정의 달 설교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주제는 부부싸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부부싸움은 가정부흥회다.” “부부싸움을 하되 한 쪽만 이기는 싸움을 하지 말고, 둘 다 이기는 싸움을 하라.”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라는 식의 부부싸움에 관한 잠언들을 쏟아내며 마치 나는 부부생활의 대가나 되는 양 의기양양해하며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중에 이 부부싸움에 관한 주제만 나오면 써먹었던 이런 유머 하나가 생각납니다. 어느 신혼부부가 깨가 쏟아지도록 신혼재미에 빠져 살다가 어느 날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서로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몇날 며칠을 계속 그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주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평소의 출근 시간과는 달리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에게 아침 6시에 깨워달라고 말을 해야겠는데,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진낸지 오래되기도 했고, 또 먼저 말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도저히 먼저 말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 남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남편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종이에 메모를 해서 아내의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6시에 깨워.”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7시가 넘었습니다. 중요한 회의를 놓쳐버린 남편은 아내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당신, 정말이지 끝까지 이렇게 할 거야! 깨우라면 깨웠어야지. 왜 안 깨웠어?” 그러자 아내는 한 마디 대꾸 없이 턱으로 남편 베게 맡을 가리켰습니다. 화가 난 남편이 살펴보니 자기 베게 맡에 아내가 쓴 메모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여보, 6시야, 빨리 일어나.”

   그런데 한 두 달 전인가요? 이런 만들어낸 유머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가 실제 사건으로 기사와 된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기사의 내용은 77살 할머니가 81살 할아버지를 상대로 이혼 청구소송을 했는데 대법원이 두 사람의 이혼을 허락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재산분할로 2억 9천만원을 지급하고 판결한 것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1969년에 결혼한 이 두 노부부는 성격차이로 결혼생활 내내 불화를 격어야 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부부싸움을 하면서 관계가 악화됐고 급기야 이들 노부부는 2003년부터 대화 없이 서로 메모지를 주고받으며 의사소통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할아버지가 메모지를 통해 어떤 요구를 하면 할머니가 답하는 식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말 한마디 없이 메모를 통해 집안일에 사사건건 간섭을 했고 할머니를 통제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전달한 메모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습니다. “두부는 비싸니 많이 넣어 찌개식으로 하지 말고 각종 찌개에 3~4점씩만 양념으로 사용할 것” “왜 멸치 똥을 안 빼고 꽁 나물국을 끓였느냐?” “정장 스봉이 거실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그 진실한 내용을 소명하라고 했는데 어찌 지금까지 묵묵부답인지? 명일까지 소명할 것” “앞으로 16:00 이후에 귀가시는 절대로 현관 차단할 것이다.” “앞으로 생태는 동태로 하고 삼치는 꽁치로 구입할 것” 이렇게 6년간이나 한 집에 같이 살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메모지로 자기 뜻을 전달하던 이 할아버지는 급기야 2008년 어느 날 할머니가 밥상에 깻잎을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했고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다못한 할머니는 퇴원한 즉시 열쇠수리공을 대동하고 남편 몰래 집에 들어가서 서류 등을 챙겨 나와 이혼소송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대한민국 대법원 대법관이 이혼을 명령한 소위 ‘6년간의 메모지 대화’ 사건입니다.

  요즘 한국의 이혼실태에 대하여 한국 가정문제상담소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앞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혼 사유 중에 가장 많은 퍼센테이지는 ‘성격차이’였습니다. 어쩌면 이런 실태들은 우리 사회에 남성우월주의적인 가부장제도가 뿌려놓은 가정 비극의 씨앗을 지금 사필귀정으로 거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에게 복종만을 요구하고 사랑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성경말씀처럼 아내는 남편에게 우리 주님께 하듯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할 때 이런 비극의 열매는 거두지 않게 될 것입니다.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둘(2)이 하나(1)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가정생활을 통하여 부부가 둘이 하나 되는 신비를 맛보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 됨을 지켜 나가고자하는 서로의 헌신과 희생과 섬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가정천국’은 결혼했다고 저절로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치열한 싸움을 통해 쟁취해 내는 것이고, 서로의 부서짐을 통해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싸우고 부서질 때는 많이도 아프지만, 아프다고 피하지 않고 솔직하고 진실 되게 서로를 대면하며, 서도 도망가려고 하지 않고 일으켜 서로 세워 주고 붙들어 줄 수 있을 때 하나님 됨을 통한 가정천국의 신비는 내 가정에서도 ‘또 하나의 천국’으로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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