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니 ‘삼국통일’이니 하는 용어가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지만,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대 왕국들의 성립 및 멸망 시점을 따져보면, ‘삼국’이란 용어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문헌들을 근거로 할 때, 고구려는 최소 기원전 233년 이전에 건국되었다. 고조선 멸망 당시에 이미 고구려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한서>‘지리지’,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으로부터 최소 150년 이전에 건국되었음을 추론케 하는 ‘광개토대왕비문’, 서기 668년에 당나라 고종과 가언충이 ‘올해가 고구려 건국 900주년’이라는 내용의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 기록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편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한편, 북한 학계에서는 고고학적 유물을 근거로 고구려 성립 연도를 기원전 277년으로 파악하고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부여는 기원전 233년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존재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서는 소서노, 비류, 온조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과의 반목 때문에 고구려를 버리고 백제를 세웠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는 고구려보다 ‘약간 늦게’ 생긴 나라다.

 가야의 경우에는, 이 나라가 서기 42년에 건국되었다는 <가락국기>의 내용을 뒤집을 만한 별다른 사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그래프>를 작성했다.  그래프를 보면 진정한 의미의 ‘삼국’을 말할 수 있는 기간은 가야 멸망 이후부터 백제 멸망 이전까지의 98년간이다. 따라서 이 그래프만 봐서도 ‘삼국시대’니 ‘삼국통일’이니 하는 표현들이 부적절함을 알 수 있다.

 이를 보면 ‘삼국’을 말할 수 있는 기간은 98년간에 지나지 않는데도,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근 1000년의 역사를 ‘삼국’이라는 틀로 설명했다.  김부식만 욕할 게 아니다. 오늘날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의 오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무심코 ‘삼국’이란 표현을 쓸 때가 많다. 국사 교과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역사는 우리의 과거다. 과거를 정밀하게 인식해야만, 현재와 미래 역시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정밀하게 인식하는 일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보다 정밀하게 구축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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