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장로교회 이동훈 목사

 심리학에서 쓰는 용어 중에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우화인 ‘고슴도치 이야기’에서 채용한 용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는 대충 이렇습니다. 몹시도 추운 어느 겨울 밤, 깊은 산 속에 사는 한 쌍의 고슴도치가 얼어 죽었습니다. 그들은 매우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어서 몸을 녹이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의 몸을 서로 찌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한 쌍의 고슴도치는 서로의 체온을 느끼려고 밀착했다가 서로의 가시에 찔려 떨어집니다. 또 다시 추위 때문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피부를 찌르는 고통 때문에 또 다시 서로 떨어지고 맙니다. 둘은 서로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결국 얼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처럼 가까이 다가 갈수도 그렇다고 떨어 질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을 두고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합니다.

   고슴도치는 태생적으로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고슴도치를 좋아해 몸을 가까이 하면 서로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도, 그렇다고 너무 멀리 있어도 안 됩니다. 일종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삶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간이라도 빼주고, 그도 나를 위해 간을 빼주길 원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격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습니다. 그저 너는 너, 나는 나. 서로에게 큰 부담이 없이 ‘불가근 불가원’(不可根 不可原)하며 사는 게 장땡입니다. 어쩌면 이게 바로 '고슴도치 딜레마'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한국의 대중가요 가수 ‘시인과 촌장’이라는 듀엣 멤버중의 한 사람이었던 ‘하덕규’씨가 작자 작곡한 ‘가시나무’라는 노랫말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이 가사 내용 중에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라는 부분이 가슴깊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의 관계 속에는 서로를 향한 ‘바램’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향해 가지는 기대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대가 상대방을 통하여 내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바램’으로 변질 될 때 이 기대는 상대를 찌르고 밀쳐내는 아픈 ‘가시’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로마서 15:7) “너희도 서로 받으라!(Accept one another!)” 한마디로 말하면 ‘고슴도치 딜레마’의 숙명을 극복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 같이”라는 말씀 속에 그 해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바램’에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의 기대를 유보하시고 먼저 우리의 있은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셨습니다. 왜 우리는 관계 속에서 아픈 상처들을 주고받을까요? 상대를 향한 ‘바램’이 너무도 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큰 기대가 상대를 찌르는 ‘가시’가되어 찌르고, 격려와 배려심 없는 비판과 나무람만이 난무하는 ‘가시나무 숲’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먼저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신 주님의 그 위대한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찌르지 아니하고 밀쳐내지 않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한 유명한 연기자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제자가 신발 끈이 풀렸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연기자는 제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보는 앞에서 신발 끈을 단단하게 동여 맺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뒤돌아서 걸어가자 그는 다시 신발 끈을 원래대로 풀어 버렸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스탭이 의아해 하며 물었습니다. “왜 신발 끈을 다시 풀어 버린 겁니까?” 그러자 연기자가 대답했습니다. “내 역할은 오랜 여행으로 지친 여행자입니다. 먼 길을 걸어온 여행자의 피로와 고난스러웠던 여정을 표현하기 위해 신발 끈을 푼 것입니다.” “그러면 왜 당신 제자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나요?” 연기자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나를 염려하여 그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에 그의 열성과 적극적인 자세를 격려하고 보답해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역할에서 신발 끈을 풀어야 하는 등의 연기 기술은 나중에 라도 가르칠 기회가 많습니다.” 오늘도 이 연기자처럼 ‘고슴도치 딜레마’ 극복을 위한 삶을 열심히 연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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