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들이 회의했다고 한다. 인간들이 우리 원숭이를 저희들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회의 끝에 분개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과 강도짓을  하며 유해 식품 등 기타 오만 범죄들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우리 원숭이를 저희 조상으로 삼는다면, 명예훼손 되는 일이라고 원숭이들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자존심 상해 못해 먹겠네", "난 자존심 빼면 시체다", "난 뭐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자존심 건들지 말아라",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는 많이 듣는 말이다. "그까짓 자존심이 뭐길래." 자존심 세우다 일을 그리 치고 하는 넋두리다.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국어사전은 자존심을 '남에게 굽힘이 없이 제 몸이 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 가지는 마음'이라 한다.

몇 사람의 어록을 찾아보았다. 자존심은 어리석은 자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다(헤로도토스),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은 침묵케 한다(쇼펜하우어), 상처 받은 자존심에서 이식된 울분은 가장 뿌리가 깊다(G.산타아냐),    상처 받은 자존심은 용서할 줄 모른다(루이 뷔제), 자존심이 없는 사람처럼  비굴하고 가엾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존심은 오만한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이다(백낙청),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자기 생활이 없다. 자기 생활이 없으면 자존심이 없고 자존심이 없는 사람에 게서는 향내가 나지 않는다(황산덕), 자존심은 악마의 정원에 피는 꽃이다(영국속담), 말에서 떨어진 사람이 말에게 말한다. "내닐려고 하던 참이야"라고(이탈리아).

자존심이 좋다는 말인가, 아니면 안 좋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책이요  진리인 성경에서 자존심을 찾아보니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렇다고 자존심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다.  딸의 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께 구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개들'이라니,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말인가. 이 말에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소리치고 뛰쳐나올 수도 있다. 그 자리에 앉아 펑펑 울 수도 있다. 이 사람 저사람  붙들고 하소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말에 오히려 놀란 것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들어보자.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이 말을 하였으니...? 이 말을 하였으니...! 그녀 딸은 즉시 고침 받았다. 만약 여기서 이 여인이 이 말을 하지 않았으면... 그녀의 딸은 여전히 고통 중에 있을 것이고, 그녀 역시 예수님을 향하여 끌어 오르는 분노를 품은 채 한 맺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이여! 조금만, 조금만 더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내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자신이 어떤 존재며 어떻게 살아야 진정한 행복의 길을 찾을 수가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인생의 방향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면 반드시 사고를 당하게 된다. 모쪼록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서 조금 더 달려도 사고를 당하지 않고 새로운 행복한 인생을 사는 독자들이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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