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아내와 함께 고국을 방문하였다. 방문 첫 한 주간을 제주도에서 보낼 수 있었다. 1996년 제주를 처음 방문하였으니 근 15년만에 다시 찾은 제주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정녕 제주는 변해 있었다 그것도 매우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절경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올레길, 한라산 중턱에 지난 4월 산의 정기를 몸으로 느끼며 각종 자연 체험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연 공원으로 새로 자리잡은 에코랜드, 비나 나무로 우거진 숲을 걸을 수 있었던 비자림, 그리고 바다의 다양한 모습과 탁 트인 절경, 산, 바다, 도시 모든 것을 갖춘 제주이었다. 인공적 가미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싱가포르, 홍콩과 비교하여 너무도 풍부한 자연의 보고로서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전현 부족함이 없는 제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관광객 외에 찾아 볼 수 없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아쉬웠다. 제주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의 캄보디아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말이다.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하다 보니, 제주가 외국인 친화적 (Foreigner Friendly)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국제 도시로 발돋움 하려 하지만, 도시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직도 외국인에게 너무도 생소한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시 정보를 볼 수 있는 시설, 안내자 등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우리의 좋은 것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제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제주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역시 서울은 에너지가 충만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을 보며 한국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며 듣는 각종 고국의 소식은 늘 암울한 일 투성이다. 최근 지하철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인터넷에 돌았던 각종 무례한 일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지하철에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르신들이 전철에 오르실라치면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동방예의지국의 힘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한국은 예절이 지켜지는 곳이며, 어른을 우대하는 정신이 분명히 지켜 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느끼며 조국의 밝은 미래를 다시 한 번 기대하여 본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일은 양극화된 사회 현상이다. 빈익빈부익부로 가진 자는 더욱 많이 갖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조차 지킬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런 사회의 편중 현상을 위하여 평등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다시 일어날 것을 위하여 기도한다. 노동 시인인 박노자씨는 이렇게 말했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이 지구 위 60억 인류 모두가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내가 먼저 적게 벌고 나눠 쓰면서 덜 해치고 덜 죄짓는 맑아진 얼굴로 모두 나처럼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되고 푸른 지구 푸른 미래가 살아난다고/ 내가 먼저 변화된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리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희망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10%의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는데, 기독교 인구가 10%를 넘어 20%를 육박하고 있지 않은가? 건강한 교회,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 고국의 밝은 미래, 부가 평등하게 배분 되는 사회, 서로를 복음으로 배려하는 사회가 세워질 것을 기대하여 본다. - 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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