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수양대군(김영철 분)의 딸과 김종서(이순재 분)의 아들 간의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문종(세종의 아들)의 부탁을 받고 어린 단종을 보호한 김종서, 쿠데타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인 단종의 권력을 빼앗고 김종서를 죽인 수양대군. 이 둘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원수지간이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자녀들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또 수양대군이 1417년 생이고, 김종서는 1383년 생으로 무려 34년이나 되는 두 사람의 나이차를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러브스토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 그럼, 이 드라마는 무엇을 근거로 그들의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는 걸까?

 <공주의 남자>는 <금계필담>이라는 민담집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책은 1873년에 전 의령현감 서유영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해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 따르면 수양대군의 딸과 금지된 사랑을 한 사람은 김종서의 아들이 아닌 ‘손자’였다. 그렇다면,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사이에서는 실제로 사랑이 이루어졌을까? 사실 이 점은 명확하지 않다. <금계필담>에서 해당 부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조(수양대군)에게는 공주 하나가 있었다. 공주는 계유정난으로 인해 조정은 물론 왕실에 피바람이 부는 것을 목도하면서 왕실 생활에 염증과 회의를 느꼈다. 그는 제발 그만하시라며 아버지를 설득했지만, 도리어 아버지의 노여움만 부추길 뿐이었다. 부녀관계가 악화될 것을 염려한 정희왕후 윤씨는 공주에게 유모를 붙여주고 재물을 쥐어주면서 멀리 도망가도록 했다. 왕후 윤씨는 공주가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

  충청도 보은군에 당도한 공주와 유모는 길에서 우연히 어떤 청년을 만났다. 길가에 앉아 쉬고 있는 두 여인에게 청년이 접근한 것이다. 두 여인이 계유정난을 피해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은 자신도 그런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모는 셋이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청년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세 사람은 산속 토굴에서 동거하게 되었다.  며칠 후 유모가 보물을 주면서 팔아달라고 부탁하자, 청년은 “이것은 모두 궁중 물건인데, 할머니께서는 이것들을 어디서 구했습니까?”라고 물었다. 유모는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그냥 팔아달라고 당부했고, 청년은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냥 팔았다. 

  1년 정도 동거하는 사이에 유모를 뺀 두 남녀 간에 애정이 생겨, 둘은 결국 혼례를 올리게 되었다. 그제야 청년은 공주에게 계유정난 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고, 유모는 공주를 대신해서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청년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는 김종서의 손자라며 집안에서 자기 혼자만 난리를 피해 도망했다고 말했다.  이런 기막힌 인연을 계기로 두 남녀의 정은 한층 더 깊어지게 되었다. 나중에 이들의 존재를 확인한 세조가 모든 것을 다 용서할 테니 한성으로 올라오라고 명령했지만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채 어딘가에서 살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허점이 많다.  첫째, 세조에게 공주 하나가 있었다고 한 대목. 공식문서 상으로도 세조에게는 딸이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조선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서는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를 두고 “익대좌리공신 하성부원군 정현조에게 시집갔다”고 했다.

 왕실 족보만 놓고 보면 수양대군의 딸이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수양대군에게 또 다른 딸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딸이 정말로 김종서의 손자와 결혼했다면 왕실에서 그의 이름을 ‘호적’에서 빼버렸을 수도 있다.  둘째, 청년의 진정성 여부. 두 여인이 “우리는 계유정난 때문에 피난 왔다”고 하자 청년도 “나도 그래서 왔다”고 똑같이 대꾸한 대목, 결혼식 후에 유모가 “이 분은 공주”라고 밝히자 청년도 “나는 김종서의 손자”라며 비슷하게 대꾸한 대목을 음미해보자. 난리 통에 객지에서 만난 청년이 들려준 이 같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번쯤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나 유모가 보물을 내놓자 청년이 “이것은 모두 궁중 물건”이라고 대꾸한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에 사는 하층민이 궁중 물건을 식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므로, 청년이 궁궐과 인연이 있는 고위층 자제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청년의 진정성 여부는, 이 글만 갖고는 무어라 판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간에 이루어졌다는 러브스토리는 위와 같이 그 진실성을 명확히 판단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믿을 것인가 아닌가는 독자들 스스로의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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