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는 한국사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어린 단종을 무력화시킨 수양대군(세조)의 쿠데타에 가담한 일로 인해, 그는 죽어서도 변절자 콤플렉스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는 신숙주보다 한술 더 뜨는 인물이 등장했다. 신숙주의 둘째 아들인 신면이 그 주인공이다. 드라마 속의 신면은 2가지 면에서 '배신의 아이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나는, 죽마고우인 김승유(김종서의 3남)의 여자를 빼앗는 역할이다. 쿠데타로 김종서 집안이 몰락한 뒤 신면은 김승유가 사랑하는 이세령(수양대군의 딸)을 자기 여자로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또 하나는,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을 선택하는 역할이다. 한성부 병력을 지휘하는 신면은 쿠데타 계유정난(1453년)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그가 없었다면, 드라마 속의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성사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 신숙주는 주군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두고두고 욕을 먹은 데 비해 아들 신면은 주군뿐만 아니라 친구까지 몽땅 배신했으니, 드라마 속의 신면은 이미 아버지를 능가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도 친구와 주군을 배신했는지 하나하나 따져보자.

 신면은 세조의 딸, 김승유와 삼각관계였나
 신면이 세조의 딸을 놓고 김승유와 삼각관계에 놓였다는 드라마 속 설정은, 이들의 연령대를 놓고 볼 때 상당히 어색하다. 이들 3인의 정확한 출생 연도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아버지들의 연령을 보면 이들 사이의 삼각관계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종서는 1383년생이고, 수양대군과 신숙주는 1417년생이다. 김종서는 수양대군과 신숙주의 아버지뻘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숙주의 셋째 아들인 신면에게는 김종서의 둘째 아들인 김승유가 아버지뻘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면, 김승유가 수양대군의 딸을 놓고 경쟁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일이었다. 신면이 실제로 세조의 딸을 사랑했을 가능성은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왕실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에 의하면, 세조의 딸은 계유정난 후에 정인지의 아들인 정현조와 결혼했다. 당시 정인지는 신숙주보다 사회적 명망이 훨씬 더 높았을 뿐만 아니라 계유정난에 대한 기여도도 훨씬 더 높았다. 계유정난 후의 논공행상에서 정인지는 1등 공신, 신숙주는 2등 공신으로 책정됐다. 이렇기 때문에 신숙주의 아들이 정인지의 아들을 제치고 세조의 사위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이처럼 신면은 김종서의 아들과 세대가 다르고 세조의 딸들과도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세조의 딸을 가운데 두고 김종서의 아들과 줄다리기를 했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신면이 계유정난에 가담?... 사실과 무관하다
 신면이 계유정난에 가담해서 단종을 배신했다는 이야기 역시 실제 사실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드라마 속 신면은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이지만, 실제의 계유정난 공신명단에는 신면이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신면은 공을 세울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이가 좀 어렸다.

  신면의 출생 연도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연령을 추정할 수 있는 간접적 방법은 있다. 그는 신숙주의 여덟 아들 가운데서 둘째다. 첫째아들 신주는 1435년 생이고, 다섯째 아들 신준은 1444년 생이다. 둘째?셋째?넷째의 출생 연도는 확인할 수 없다. 첫째와 다섯째가 9년 터울이므로, 신면은 1437년경에 출생해 계유정난(1453) 당시 17세 전후였을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반군을 진두지휘할 입장은 아니었다.   따라서 드라마 속의 신면은 아버지 신숙주를 능가하는 배신자로 이름을 날리지만, 실제 신면은 드라마 속의 상황과는 별 관련이 없었으므로 지하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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