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잦은 출장으로 공항을 찾을 일이 많았습니다. 최근에 공항을 다녀오신 분들은 Pena 불루버드가 공사중인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기존의 도로를 새롭게 포장을 하려는 것인지, 새롭게 2차선 도로를 먼저 뚫어놓은 다음 도로를 막고, 한창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일전에 공항을 가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고 중간에 2차선 도로를 새롭게 만들고 있는가 궁금하였는데, 바로 도로 공사를 하기 위함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항을 자주 오고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는 미국 사람들의 치밀함 이었습니다.‘빨리 빨리’에 익숙하여있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이들은 미리 길을 만들어 놓은 다음 기존 도로의 공사를 시작하는 치밀함입니다.  한국에서 건물을 짓는 것과 미국에서 건물을 짓는 것의 결정적 차이는 도로 공사라고 합니다. 한국은 먼저 건물을 짓는데, 미국은 먼저 길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아마 한국도 이제는 많이 변했을 것입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산자락 아래 지어진 건물이었는데, 먼저 길을 닦아놓지 않아서 번번히 학교를 갈 때마다 불편을 겪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별히 비가 오는 날이면, 아주 우리는 알아서 연탄재를 한 장씩 의무적으로 들고 가서, 가는 길에 연탄재를 깨어 길이 고인 물 문제를 해결하고는 하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런 건축을 위해서 길을 먼저 닦을 줄 아는 치밀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제가 생각한 것은‘대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의 도로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공사를 할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무작정 도로 보수나 개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대안적 도로를 만들어 놓은 뒤 공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더 더욱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대안이 없이 문제 만을 지적하는 것은 불평과 불만에 불과하며 대안이 없는 문제 제시는 결국 공동체의 화합을 부수게 되고, 생산적인 토론을 불러일으키기 보다 파괴적인 이웃 탓을 통하여 공동체가 세워지기 보다는 무너지게 될 뿐인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그리고 마치 임시로라도 길을 닦아놓고 기존의 도로를 보수, 개축 공사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과정적 대안’또한 제시하는 가운데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 성숙한 공동체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공항을 다녀오신 분들이라면 공항 안의 명물이었던 분수대가 사라진 것을 또 보셨을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분수대를 사방으로 막아 놓았는데, 저는 분수대를 수리하기 위함 인줄 알고 관심 있게 보지 않다가, 어느 날 벽면에 기록된 분수대를 막아놓은 이유를 읽게 되었습니다. 공항 철도 확장 공사를 하면서 분수대 아래로 철도가 통과할 예정인데, 분수대를 옮기려고 하는 공사비가 너무도 많이 들어, 분수대를 해체하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수가 Public Art (공공 예술) 작품이어서, 그 작품을 해체하는 결정에 이르기까지, 거의 일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고 적고 있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하였지만, 또 한 편으로는 하나의 조형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예술 작가, 대중, 시 정부가 포함 된 위원회가 거의 일년이상 의논하고 계획하며 실제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에 돌입하는 것이 얼마나 치밀함의 발로인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감성적 차원에 강해서,‘으쌰으쌰’하며 감성적 동기부여가 되면 큰 일을 행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계획의 치밀함이 결여 되어‘냄비정서’쉽게 끓고 쉽게 식어버리는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이민자들이 이제 미국에 살면서 미국 문화의 이런 치밀함 들을 배우고 습득하여, 또 우리 조국을 위하여 우리의 경험을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 조국은 정녕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복된 걸음을 재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은 변화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우리의 삶을 재조명하여 보는 가운데 변화할 것은 속히 변화하는 가운데 세상을 섬기는 복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변화를 통한 성장과 성숙을 모두가 체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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