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목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자유로운 연애 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경혜공주(홍수현 분)는 세대차 나는 개인교사들을 쫓아낼 목적으로 성희롱을 했고, 김승유(박시후 분)는 경혜공주를 가장한 이세령(문채원 분)에게 상당히 '진하게' 말을 걸었고, 마포 건달은 길에서 만난 이세령에게 아주 노골적으로 접근했다. 또 김승유는 이세령을 자기 말에 태우고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표현이 웅변하듯이, 조선시대 연애풍속은 드라마처럼 자유롭지는 않았다.하지만, 조선시대 사람들도 어떤 경우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구애 공세를 펼쳤다. 그들의 적극성은 대담한 헌팅 문화에서 잘 드러난다.  조선 후기 서유영이 정리한 민담집인 <금계필담>은 선조, 광해군 때의 정승인 심희수(1548~1622)가 결혼에 골인한 과정을 전하고 있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한 심희수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를 상대로 외교활동을 펼쳤고, 종전 후에 좌의정에 올랐다가 광해군 정권에 참여해서 우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심희수는 스물다섯 살 때 과거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그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필운대(바위 명칭) 근처에 한 여성이 살았다. 전직 재상의 양녀인 그는 전형적인 '엄친딸'이었다.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문장에도 능할 뿐 아니라 바느질과 음식 솜씨마저 좋았다. '내 남자는 내 손으로'란 신념을 갖고 있는 그는 남편을 골라주겠다는 아버지를 만류하고, 필운대 근처의 작은 집에서 행인들을 관찰하곤 했다. 그러던 중, 스무 살 전후의 심희수가 그곳을 지나가자 얼른 집 밖으로 나가 말을 걸었다. "마침내 그를 불러들여 정을 통했다"고 <금계필담>은 말하고 있다. 한동안 열애하던 두 남녀는 심희수의 수험생활을 위해 몇 년간 헤어졌다가 그가 합격한 뒤에야 결혼에 골인했다.

 16세기 조선이 낳은 불세출의 개혁가인 조광조를 죽이는 데 가담한 심정이란 인물이 있다. 그의 손자이자 선조 때 좌의정인 심수경의 이야기가 <금계필담>에 소개되어 있다.  훗날 문과시험에 장원급제한 심수경은 머리가 매우 좋고 거기다가 외모까지 상당히 수려했다. 그런 그를 흠모한 처녀가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다. 처녀는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심수경의 글 읽는 소리를 경청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처녀는 남몰래 심수경의 집에 들어가 그의 방으로 직행했다. 인기척도 없이 방문을 열고는, 대담하게도 심수경의 책상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낯선 처녀의 등장에 내심 놀랐겠지만, 처녀가 말없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심수경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책을 마저 읽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누구냐고 물어보니, 처녀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고관대작의 딸이었다. 처녀는 "도련님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왔을 따름"이라고 말했지만, 심수경은 재상집 처녀가 어찌 이리 부끄러운 짓을 하느냐며 한바탕 호통을 쳐서 처녀를 내쫓았다. 위의 사례들을 포함해서 조선시대 헌팅문화를 보면 헌팅을 시도하는 쪽이 상당히 직접적이다. 이성에게 곧바로 다가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헌팅이 아주 흔했던 것은 아니다. 유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사회였기 때문에, 연애문화 역시 오늘날에 비해 경직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경직성의 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어떤 경우에는 헌팅 같은 방식을 통해 이성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곤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였던 것이다.  사회체제는 인간의 본성을 제어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지만, 사회체제가 본성을 지나치게 억압하면, 본성이 도리어 사회체제를 억누르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본성을 적절히 제어하면서도 적절히 살려줄 수 있는 체제를 찾아내는 것이 인간사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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