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엔 때 묻지 않은, 기껏해야 무뚝뚝한 사람쯤으로 여겼죠.” 30대 중반의 여성 P씨가 생과부로 살아온 지 올해로 10년. 흔히 섹스리스 문제에 ‘몸이 안 좋아서, 호르몬이 부족해서, 매력이 없어서, 불화가 심해서’ 등등의 이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P씨의 사례는 남편에게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사실 남편은 짧았던 연애시절부터 특이했다. 연락도 없다가 뜬금없이 나타나 말없이 있다 휙 사라지고, 몇 번 만나지 않았고 감정이 깊어진 것 같지도 않은데, 느닷없이 결혼계획을 말하던 남편. 스킨십이나 성적 요구가 전혀 없는 것이 그저 여자 경험이 없는 순수한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는 아내. “남편이 문제가 있다는 걸 신혼여행 때 알게 됐죠. 지금까지 10년째죠. 휴….” P씨의 깊은 한숨은 지난날의 고통만큼 깊다. 신혼여행에서도 전혀 성관계를 원치 않고,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아내를 방치해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대하는 남편.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제가 다가가 봤더니 남편은 표정부터 행동까지 멀뚱멀뚱하다는 말이 딱입니다.”  사실 남편의 성적 기피는 그의 부족한 인간관계를 그대로 상징한다. 내성적인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과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힘들다는 감정표현도 없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돈 버는 기계처럼 살 뿐이다.

 그에겐 진정한 친구도 없다. 모임이라 해 봤자 직장의 회식 자리에 마지못해 참석하거나 이해관계 때문에 만나는 아주 표면적인 정도가 전부다. 그에게 죽마고우를 지속적으로 만나거나, 아내에게 단짝 친구를 소개해주는 일은 당연히 없다.

 성은 일반적인 관계보다 더 깊은 인간관계, 즉 애정과 사랑의 감정을 주고받는 친밀한 관계다. 그런데 사회성이 근본적으로 결여된 남편은 남녀 불문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본 적도 없고 맺을 줄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남편은 한마디로 ‘asexual’, 즉 무성애(無性愛)자다. 성적 애정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1980년대 스톰스(Storms) 박사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동성·이성을 좋아하는 호감이나 그 이상의 성적 감정이 있는데, 개인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개념화했다. 그런데 동성·이성이든 어느 쪽에도 친밀감이나 성애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P씨의 남편은 그런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고 무성애자인 남편이 아예 성행위 자체를 안 한다고 볼 수는 없다. P씨도 남편이 습관적인 자위나 가끔 직업여성을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그 두 가지 행태는 여성과 지속적인 친밀관계의 부담이 없기에 남편은 가끔 이런 식으로 쾌락을 충족하는 것이다.

 P씨 부부의 섹스리스는 남편의 사회성 결여라는 성격적 문제를 지닌 사례로 다소 심각한 경우다. 섹스리스 부부들 중에는 P씨 남편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배우자와의 친밀관계를 적절히 지속하지 못하고 부부 사이에 담을 쌓고 점점 무성애의 경계선까지 추락하는, 성격적으로 취약한 남성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기보다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며 끊임없이 문제를 부정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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