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을 재해석한 SBS <뿌리 깊은 나무>. 이 드라마는 '밀본'과 '밀본지서'라는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숨은 뿌리'를 뜻하는 밀본(密本)은 두 가지를 가리킨다. 한편으로는 나라의 근간인 사대부 세력을 의미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대부의 정권 장악을 지향하는 비밀조직을 지칭한다.

 밀본지서(密本之書)는 임금이 아닌 사대부가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정도전의 유언을 담은 문서다. 밀본지서의 행방은 이 드라마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적 동력이다. 드라마 속 밀본지서의 주인공인 정도전은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과 대립한 인물이다. 정도전은 사대부 중심주의, 이방원은 왕권 중심주의를 표방했다. 사대부가 곧 신하였기 때문에, 사대부 중심주의는 신권(臣權) 중심주의와 통한다. 또 사대부의 대표는 재상이었기 때문에, 사대부 중심주의는 재상 중심주의와도 통한다.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결은 조선 건국 6년 뒤인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이 이방원 측에게 살해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때 정도전이 죽어가면서 밀본지서라는 유언서를 남겼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설정이다.

실제의 정도전, '밀본지서'를 남겼을까

 물론 실제의 정도전은 밀본지서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밀본지서에 상응하는 것을 남긴 적은 있다. 그것은 정도전이 1394년에 편찬한 법전인 <조선경국전> 속에 수록되었다. 사대부 중심주의 혹은 재상 중심주의는 정도전의 유언서가 아닌 <조선경국전>에 적힌 공개적인 내용이었다. <조선경국전> '치전' 편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군주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고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 같지 않다. 그러므로 재상은 군주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것은 받들고 옳지 않은 것은 막아서, 군주로 하여금 대중(大中, 중용)의 경지에 들도록 해야 한다."  군주는 선출이 아닌 세습으로 옹립되기 때문에, 어떤 자질을 가진 군주가 등극할지 장담할 수 없다. 왕후나 후궁의 몸에서 '좋은 군주'가 나올지, '나쁜 군주'가 나올지, 아니면 '이상한 군주'가 나올지 누구도 확단할 수 없다.

  이처럼 군주의 자질이 불확실하므로 좋은 자질을 갖춘 재상(사대부의 대표)이 군주를 보좌해야 한다는 것이 정도전의 이상이었다. '군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재상이 군주를 보좌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도전의 진심은 단순히 군주를 '보좌'하는 데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의 본심은 재상이 사실상 국정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역사를 3대 시기로 구분했다. 제1기인 요임금, 순임금 시대에는 임금과 신하가 모두 성자였기에, 양측의 협력에 의해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2기인 우왕, 탕왕, 문왕, 무왕 시대에는 임금과 신하가 모두 현자였다. 성자보다 한 단계 떨어진 현자의 시대에 불과했지만, 이 시대 역시 양측의 협력에 의해 태평성대가 펼쳐졌다. 그런데 제3기인 패자의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부터 양상이 바뀌었다. 이전 시대만 해도 임금과 신하의 질이 똑같았지만, 이때부터는 임금의 질이 신하보다 떨어졌다. 이것은 물론 정도전의 논리다.

  제3기에는 덕이 아닌 패(覇) 즉 '힘에 의한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왕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전권을 맡길 때만 나라가 잘 운영될 수 있었다. 이 역시 정도전의 논리다.   "만약 임금이 중간 정도의 자질을 갖고 있을 경우, 사람(재상)을 잘 얻는다면 나라가 다스려질 수 있지만, 잘못 얻는다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사실, 제1기에는 임금?신하가 모두 성자였고 제2기에는 양측 모두 현자였으며 제3기부터는 임금의 질이 떨어졌다는 정도전의 주장은, 사대부 중심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한 논리에 불과했다. 상당한 억지가 들어간 논리다.

  그런 억지 논리를 법전에까지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정도전과 사대부들이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런 '오만함'이 <조선경국전>에 반영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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