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물 연구가인 에모토 마사루는 그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좋은 말은 물의 결정체를 아름답게 하지만 나쁜 말은 물의 결정체를 혐오스럽게 한다.”라고 주장해 말의 영향력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몇 해 전에도 한국의 공영방송국인 MBC가 ‘실험다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실험을 해서 방영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쌀밥을 두개의 유리병 속에 각각 넣고 한쪽 병을 향해서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등의 좋은 말을 계속하고, 다른 병을 향해서는 “짜증나” “못생겼어”등의 나쁜 말을 계속했습니다. 10여일이 지난 후에 병 안을 관찰해 보니 좋은 말만 들었던 병 안의 쌀밥은 색이 거의 변하지 않은 상태로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나쁜 말만 들었던 병 안의 쌀밥은 거의 부패한 색으로 변해 썩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을 얼마나 과학적으로 인정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일 이것이 진실이라면?’하고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한 낫 한 모금의 물도, 한 주걱의 밥풀도 말의 영향을 이렇게도 크게 받는다면 하물며 말로 한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큰 말의 영향력 아래 놓여 살겠는가하고 말입니다.

  가부장적인 가정 전통 속에서 살아온 한국 사람들은 말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보다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더 많이 받고 살았습니다. 예를 들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말이 많냐?” “제발 따지지 좀 말아라.” “남자새끼가 되가지고 뭐가 그렇게 잔말이 많냐?” “그래 니 잘났다.” “너무 잘 난척 하지 마라.” “말 많은 사람치고 제대로 된 사람 한 사람도 없다.” 어려서 부터 이런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세뇌당한 언어생활의 환경은 어쩌면 우리 모두를 언어 장애자로 만들어 놓고 말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이민 생활 속에서 언어에 주눅 들어 사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학문적으로 소통할 줄 모르는 답답증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이 부른 노래를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일에는 너도나도 고수들이 되었는데 자신의 사상과 생각을 전달하고 토론하는 일에는 잼뱅이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말에도 꼴이 있고 색깔이 있고 맛이 있어 어떤 말은 거칠고 투박하여 짜증이 나는가 하면 어떤 말은 아름답다 못해 그 향내에 흠뻑 취할 때가 있습니다. 말을 참 맛깔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다 했어?” “다른 의견이 있었구나.” “그랬어. 미처 생각 못했는데 듣고 보니...” “정말 멋있다.” “그런 표현은 어디서 배운 거니?” “그렇게 조리 있게 말하는 것 보니 책을 많이 읽는가 보네.” 내가 한 말에 대해 이런 반응을 상대방으로부터 들을 수만 있어도 우리네 언어장애는 많이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며 차츰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면서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의 전부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타인의 말에는 쉽게 화내고 속상해하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한 말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상대방은 내가 한 말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고 아파합니다. 자신이 하는 말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말이 인격이고, 말의 변화가 삶의 변화이며, 말로써 모든 관계가 나빠지기도 하고 좋아지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면 내가 하는 말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과 의미로 들릴지를 자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영국의 총칼에 눌려 실의와 절망에 처한 인도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마하트마 간디의 한 마디 말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길가에 쓰러져 슬피 울고 있는 한 할머니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며 간디는 말했습니다. “할머니, 모든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요. 그러나 나에게는 손이 모자라는군요.” 이 말 한 마디가 인도인들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고통당하는 인도인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던져주었습니다. 인도인들은 간디의 이 ‘사랑의 말’ 한 마디에 힘을 얻어 독립을 외쳤다고 합니다. 말에는 이처럼 힘이 있습니다. 오늘도 무심코 내 뱉은 말 한마디로 인해 울고 웃고 아파할 사람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입니다. 구약 성경 잠언에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누군가에게 “금 사과”를 대접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좋은 말만하고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