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배낭 여행을 시작하면서 첫 행선지는 영국이었다. 신사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이었지만 필자의 마음은 사람에 대한 의심으로 불안했다.

굶어 죽을 일도 없을 텐데 라면과 초코파이, 고추장 양념통을 한가득 챙겨 한국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쓸데없는 물건들이었는데, 한 개라도 더 가져가기 위해 배낭은 터질 것 같았다. 배낭을 짊어진 뒷모습은 이랬다. 머리위로 배낭이 올라와있어 머리는 보이지 않고, 배낭 아래에는 짧은 종아리만 조금 보일 뿐이었다.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공항 수하물 코너에서 찾아 나왔다.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10시쯤이었다. 기내에서 자다가 늦게 내린 탓에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한국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출구 사인을 따라 갔지만 도대체 나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길고 음산했다. 30여분을 그 길을 따라 나가다 드디어 공항 건물에서 나온 듯싶었는데 알고 보니 공항 건물 뒤편이었다. 인적도 없고, 방향 감각을 잃은 채 불안한 마음으로 잠시 서성이고 있는데 공항 직원 같은 사람이 다가와 “어디를 찾고 있냐”면서 영어로 물었다. 컴컴한 곳에서 웬 아저씨가 다가 와서 물어보니무서워 잠시 몸을 주춤했다. 놀란 얼굴을 하고 한참을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보니 그는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건물 저쪽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했다. 필자는 그것도 모르고 하마터면 놀라서 도망을 갈 뻔했다. 그는 조그마한 대한항공 사무실로 나를 데려가서 영국 전철 지도를 펼쳐 보여줬다. 내가 가야 할 곳까지는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면서 갈아타는 역을 종이에 자세히 적어 주었다. 그래도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전철을 타고 예약된 호텔 근처 역에서 내렸다. 다시 무거운 배낭을 짊어 지고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한 손에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래도 주변이 번화해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아 공항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전철역에서부터 계속 따라오는 아저씨가 있었다. 지도에 정신을 집중하면서도 그 사람이 자꾸 거슬렸다. 두 블록 정도를 걸었을 때 그 사람은 “어디를 가냐”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또 다시 “내가 데려다 줄 수 있느니 주소를 달라고”했다.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고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또 다시 “무슨 호텔을 찾냐”고 그가 물었고 그제서야 나는 간단하게 호텔 이름만 말했다. 그는 이 길을 따라 쭉 가다가 오른쪽에 있다고 손짓으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목적지를 찾았는데, 그때까지도 그 사람은 나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왔고, 내가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는 듯했다. 모르는 곳에서 낯선 사람이 계속 따라오니 당연히 무서웠고, 무조건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했다. 그런데 다음날 알고 보니 그는 그 동네에서 마음씨 착한 아저씨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배낭 족들이 많은 그 동네에 오랫동안 살아서인지 배낭 족들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영국에 머무른 2주 동안 도움을 많이 준 친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십 여 년이 흘렀다. 요즘 갑자기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필자가 또다시 그 의심 많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누가 좋은 상품을 추천하면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일거야”, 누군가 자신의 경험담을 잘난척하면서 이야기 하면 “거짓말일 거야”, 하물며 칭찬을 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왜 저렇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일까”라고도 생각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해야만 이 험한 세상에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없어진 것이다. 무턱대고 의심하고, 비아냥거리면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요즘같이 어려울 때 일수록 말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설령 뒤돌아 서서 딴 소리를 할지언정, 적어도 앞에서 말하는 이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다. 그 ‘예의’라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경청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영국에서 만난 그 친구는 “ 무조건 사람을 의심하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예견치 못한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한낱 길거리 불량배로 오해 받았던 그가 때때로 추억 속에서 걸어 나와 사람들에게 진지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만들곤 한다. 잘난 사람에게는 잘난 점을, 못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점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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