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의 됨됨이에 대한 <삼국사기>의 평가는 의외로 호의적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편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의자왕은 무왕의 맏아들이다.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무왕 재위 33년에 태자가 되었다. 어버이를 효심으로 받들고 형제들을 우애로 대하니, 당시 해동증자(동방의 증자)라 불렸다." 이처럼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의자왕에게 뜻밖의 일이 생겼다. 백제 멸망 4년 전인 의자왕 16년 3월(656.3.31~4.29)의 일이다. 의자왕 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6년 봄 3월, 왕이 궁인들과 더불어 음탕을 즐기고 쾌락에 탐닉하며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좌평 성충이 극력으로 간쟁(諫爭)하자, 왕은 분노하여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이때부터는 감히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의자왕은 성실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술에 탐닉하고 고주망태가 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폭음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안 하던 짓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의자왕이 술에 빠진 것은 일이 잘 안 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일이 너무 잘되어서'였다. 의자왕 16년 직전에 벌어진 사건들을 종합하면, 의자왕은 세 가지 면에서 '꽤 잘 나가는 왕'이었다. 그 세 가지를 살펴보면, 그가 재위 16년부터 술독에 뛰어든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의자왕은 전쟁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데뷔 이듬해인 의자왕 2년 7월에는 직접 말에 올라타 1개월 사이에 40여 개의 신라 성(城)을 순식간에 점령했다. 성 하나는 보통 읍의 크기와 비슷했고, 읍 하나를 점령하면 주변 지역까지 덤으로 차지했다. 40여 개의 성을 한 번에 빼앗았으니,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 다음달에 의자왕은 전략적 요충지인 신라 대야성(지금의 경남 합천 일부)을 점령했다. 또 의자왕 3년 11월에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 당항성(지금의 경기 화성 일부)을 빼앗았다. 당항성은 신라와 당나라를 잇는 루트였다.  의자왕은 의자왕 5년 5월에 신라의 7개 성을, 8년 3월에는 10개 성을, 9년 8월에는 7개 성을 함락했다. 15년 8월에는 고구려?말갈과 연합하여 30여 개의 성을 빼앗았다. 얼마 되지 않는 신라 국토가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의자왕은 신라를 압박하고 들어갔다.

  의자왕은 '창'뿐만 아니라 '입'으로도 성과를 거두었다. 외교 분야에서도 대성공을 이룩한 것이다. 의자왕 3년 11월에는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항성을 빼앗고 13년 8월에는 왜국과 화친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15년 8월에는 고구려, 말갈과 연합하여 30여 개의 신라 성을 빼앗았다. 고구려-말갈-백제-왜국으로 구성된 세로축 동맹으로 신라-당나라의 가로축 동맹에 맞선 것이다.

   외치의 성과는 내치의 성과로 연결된다. 의자왕은 내정에서도 완벽했다. 여기서 '완벽했다'는 것은 정적들이 사라질 정도로 권력을 '아주 확실하게' 장악했다는 뜻이다.  의자왕 16년 3월부터는 "감히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폭음에 대한 비판을 포함해서 자신에 대한 견제 자체를 소멸시킬 정도로, 그는 완벽하게 전제왕권을 구축했다.  이렇게 전쟁과 외교와 내치에서 대성공을 기록한 의자왕. 나아가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누가 봐도 그는 '너무' 완벽한 군주였다.

  의자왕 15년 8월을 계기로 의자왕이 절정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16년 3월에 성충이 그에게 "술 좀 작작 드시죠!"라고 간언한 배경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나라만 생각하고 불철주야 일만 하던 의자왕이 15년 8월을 계기로 긴장이 확 풀려 술독에 빠졌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그때부터 멸망 때까지 백제는 군사적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의자왕이 폭음에 빠진 것은 전쟁, 외교, 내치에서 '너무 큰' 성공을 이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걱정거리를 모조리 없애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걱정거리를 죄다 없앴을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 도리어 그의 나태함을 초래했던 것이다. 너무 완벽한 성공이 오히려 화근이 된 것이다.  실제로는 여전히 적이 남아 있었지만, 의자왕의 대성공은 그의 마음속에서 적의 존재를 지워 버렸다.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드는 적이 마음속에서 사라졌으니, 더 이상 긴장할 이유도 더 이상 노력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의자왕이 '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서 적이 계속 준동했다면, 의자왕과 백제는 전혀 다른 운명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완벽함에 취해 스스로 물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