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 하면 온몸이 나른해지고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데 어쩌란 말이야?” 섹스리스로 아내의 불평을 샀던 30대 후반 P씨는 늘 그렇게 항변했다. 평소 건강에 자신 없던 그는 성행위 후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한 상황이 몸에 큰 탈이 난 것 같아 불안이 앞섰다. 그는 이런 두려움을 아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며 필자에게 아내를 설득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엔 P씨가 더 문제였다. 그는 성행위 후에 몰아치는 나른함과 졸림 현상을 건강문제로 오해한 나머지 성관계는 연중행사로 할 뿐이었다. 그나마 성행위를 하더라도 사정을 피하려 애썼다. 이런 건강 염려증 때문에 병원도 여러 군데 전전했다. 각종 정밀 검사의 결과는 매번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마저 “문제를 찾아낼 능력이 없는 현재의 의학 수준 때문”이라며 자신의 ‘중병’과 성행위가 해롭다는 착각을 철저히 믿어 왔던 P씨.

 우리 주변엔 성행위 후 몸이 늘어지는 이완 현상을 두고 ‘기’를 빼앗겼다거나 사정을 하면 소중한 그 무엇이 낭비된다는 등 성행위가 몸에 해롭다는 오해에 집착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성행위 후 심신의 강한 이완현상은 지극히 정상이다. 성흥분을 하면 극치감에 오르기 직전 강력한 근육긴장 상태가 선행하고, 극치감 후 흥분이 차차 감소하면서 몸은 반대로 완전히 이완된다. 이렇듯 성흥분의 가파른 상승·이완 곡선이 마치 청룡열차를 탄 듯 널뛰는 현상은 성적 흥분과 쾌감이 클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는 자연현상일 뿐이다.

 이는 오르가슴 전후 자율신경계의 급변 때문이다. 부교감신경이 지배하는 흥분기와 달리 오르가슴 시기엔 교감신경이 극도로 치솟은 후 급격히 하강하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오르가슴 후 전신의 이완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성행위 중 근육운동이 심폐기능에 도움을 주듯 성행위 직후 동반되는 이완은 심신의 안정을 유도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덧붙여 P씨가 신봉하는 ‘접이불루’, 즉 성행위는 하되 사정하지 않고 정액을 아껴야 한다는 것도 성의학에서는 전혀 사실과 다른 잘못된 통념이다. 성기능의 건강을 위해선 정액의 적절한 배출이 필요하고, 과하지만 않으면 된다. 적절히 사용해야만 적절한 생산력도 유지되는 것이다. 전립선 문제가 있을 때는 치료 목적으로도 정액 배출을 권장하고 있다. ‘접이불루’보다 적당히 사용하지 않으면 성기능 조직이 퇴화한다는 ‘용불용설’이 더 맞는 얘기다.

 따라서 P씨처럼 성행위 시 사정을 억지로 참고 막는 습관이나, 성행위 후 몸이 늘어지며 기가 빠져나간다고 건강을 염려해 성행위를 피하는 것은 한마디로 ‘오버’다. 다만 과거에 비해 정액량이나 사정 시 쾌감이 턱없이 줄고, 조루현상이 악화되거나, 성욕이나 발기력이 떨어지는 등 이상현상이 생기면 성기능의 적신호라 여기고 치료를 고려해봄 직하다.

 ‘탕진’이라는 표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성행위에 집착해 체력을 낭비하는 것에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 오히려 평균 빈도의 성생활은 건강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영양제라 하겠다.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에 성생활은 실내에서 간편히(?) 행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유산소 운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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