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강채윤(장혁 분)은 간절한 소원 하나를 품고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궁녀 소이(신세경 분)와 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그러나 궁녀와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은 조선시대에는 결코 '착한 소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법에 위반되는 '나쁜 소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속의 채윤과 달리, 대부분의 조선시대 남자들은 궁녀와의 사랑을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법전들에서는 "궁녀가 바깥사람과 간통하면 남녀 모두 즉각적으로 참형을 가한다"고 규정했다. '바깥사람'이란 임금 이외의 남자를 가리킨다. 궁녀가 임금 이외의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참형(참수형)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실상을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가 현종(숙종의 아버지) 때 발생한 '귀열이 사건'이다.  <현종실록>에 따르면, 귀열이란 궁녀가 서리(하급 관료)인 이흥윤과 성관계를 가져 아이까지 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흥윤은 귀열이의 형부였다. 충격을 받은 조정에서는 논의가 분분했다. 형조와 승정원에서는 교수형 정도로 처리하자고 건의했지만, 현종은 혼자 끝끝내 참형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한번 궁녀는 영원한 궁녀였다. 궁에서 퇴직한 뒤에도, 성관계 금지의무는 평생을 두고 집요하게 궁녀를 쫓아다녔다. 그래서 전직 궁녀와 살림을 차리는 것 역시 법으로 엄금되었다.  이렇듯 궁녀와 더불어 살림을 차린다는 것은 실정법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남자들에게 희망이 될 만한 사례가 있었다.   드라마 속 세종처럼 외간남자와 궁녀의 사랑에 대해 관용을 베푼 임금이 있었다. 세종의 증손자인 성종(연산군의 아버지)이 그 주인공이다. 성종은 조위나 신종호 같은 젊은 문신들을 아꼈다. 1457년에 출생한 성종은 이들보다 좀 어린 편이었다. 조선 후기 민담집인 <금계필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느 날 밤, 성종은 내시 한 명만 데리고 홍문관을 시찰했다. 그곳에서는 숙직 중인 조위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성종이 문을 열려는 순간, 그 방의 뒷문을 열고 얼른 들어가는 궁녀가 있었다. 순간, 성종은 문에서 손을 떼고 방안을 몰래 들여다보았다.

 궁녀는 조위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조위가 완강히 거부하자, 궁녀는 칼을 꺼내 자결하려 했다. 조위는 할 수 없이 궁녀를 끌어안았다. 다음 날 아침, 조위가 사형을 자청하자 성종은 "나 혼자만 아는 일"이라며 덮어두었다. 그런데 그 일은 성종 혼자만 아는 일이 아니었다. 전날 밤, 신종호도 홍문관에 갔다가 조위와 궁녀를 목격했던 것이다.

 신종호가 이 일을 임금에게 보고하자, 성종은 그에게 함구를 지시했다. 성종은 유능한 관료를 잃기 싫었던 것이다. 그 직후, 성종은 신종호를 평안도 암행어사로 파견하면서 "평안도에는 미인이 많으니, 너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종호가 떠난 뒤, 성종은 평안도 관찰사에게 비밀지령을 내려 기생을 시켜 어떻게든 신종호를 유혹하라고 명령했다.   임지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은 신종호는 한밤중에 들려오는 여인의 통곡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울음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선 그는, 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하고 순간 넋을 잃었다. 대단한 미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다름 아닌 옥매향이라는 기생이었다.

 신종호는 옥매향에게 접근해 왕명을 어기고 기생을 가까이했다. 이 모든 것은 관찰사를 통해 성종에게 그대로  보고됐다. 임지에서 돌아온 신종호는 낌새를 알아챈 신종호는 즉각 엎드려 죄를 청했다. 성종은 "젊은 사람들이 어찌 실수가 없을 수 있겠느냐?"며 "지난 번 조위의 사건도 이것과 똑같은 것"이라면서 한 살 많은 '형님'에게 인생과 사랑을 가르쳤다. 성종은 조위의 일을 알고 있는 신종호의 입을 막고자 이런 일을 꾸몄던 것이다.

성종은 조위와 신종호의 죄를 덮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위와 궁녀를, 신종호와 옥매향을 결혼까지 시켜주었다. 그러나 이렇게 몇몇 억세게 운좋은 사람들 외에 조선시대 남자들에게 궁녀와의 사랑은 감히 넘볼 수 없는 나쁜 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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