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 1991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사건의 피의자 여성이 했던 말이다. 그는 아홉 살 때 동네 아저씨로부터 당했던 성폭행 피해를, 20년의 긴 세월 만에 살인으로 복수했다. 그리고 지난해 우리 사회는 이른바 ‘도가니 사건’ 가해자들의 파렴치한 모습과 피해자들의 끔찍한 고통을 대비하며 경악했다. 그런데 성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필자는 이런 아픔을 진료실에서 훨씬 자주 접하며 산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 이보다 많은 불행이 우리 곁에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일어난다. 직접적인 강제성이 드러나진 않지만 여성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경우는 더더욱 많다. 30대 초반의 여성 P씨는 그런 상황의 피해자다. “그땐 제 마음이 너무 약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고작 노리개였을 뿐….” P씨는 힘들었던 시기에 제법 능력과 사회적 명성이 있던 남성 K씨를 만났다. 한마디로 남녀 관계가 남성을 ‘믿고 따르는’ 데서 시작됐다. 간혹 남성의 사회적 지위는 유대감과 감정적 지지를 받고 싶어 하는 여성의 본능적 심리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또한 K씨가 P씨의 삶을 좌지우지할 열쇠를 쥐고 있었던 점도 불행을 키웠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야 여성이 동의한 것이니 책임 없다고 주장하나 사실은 힘의 불균형을 교묘하게 이용한 성적 착취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남성들은 피해를 줬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마치 자신이 구원자였던 양 뻔뻔함으로 일관한다. 그 내면에 자신의 부족함을 우월성으로 가린 치부를 부정하면서 말이다. 약자에 대한 성적 착취는 권위 있는 대상과 약자 사이에 흔히 일어난다.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고용주와 피고용인, 스승과 제자, 의사와 환자, 일부 종교단체의 리더와 신도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례에서 비롯되는 여성들의 하소연이 근래 더욱 늘고 있다.

 이런 관계에 잘 개입되는 남성들은 그들대로 특징이 있다. 적절한 여성과 대등한 관계로 사귀는 데는 취약하고, 이성 교제에 뿌리 깊은 열등감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우월한 부분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약한 상대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 이런 남성들은 겉으로만 강할 뿐 힘없는 아이를 데리고 주도권을 쥐는 못난이와 다를 바 없다. 피해자가 입는 심리적 상처는 꽤 오래간다. 특히 약자로서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되면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 결혼 관계 및 대인 관계에 상당한 결함이 초래될 수 있다.  이처럼 힘의 불균형이 두드러지는 성적 착취 관계라면 그 잘못은 강자에게 더 책임을 묻는 게 옳다. 예를 들어 설령 제자가 유혹하더라도 스승의 입장에서는 선을 긋는 것이 올바른 처신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폭력적인 강간만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한 지위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한 성관계도 색깔만 달리한 성폭력이다. 세월이 지나면 저절로 잊혀질 줄 알겠지만 피해 여성의 상처가 아물지 못하면 그 원한도 깊어진다. 새해가 시작됐으니 자신의 지위와 능력으로 성적 착취를 일삼는 나쁜 남성들의 사례가 줄기를 바란다. 그들의 이중성에 언젠가 숨겨졌던 도가니가 다시 들끓을지 모른다. 아니, 피해 여성의 분노는 어딘가에서 끓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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