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무속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MBC <해를 품은 달>. 1월 26일 제8부에서 이 드라마는 특이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만성 질병으로 부부생활에 번번이 실패하는 임금 이훤(김수현 분)을 위해 이른바 '액받이 무녀'를 동원하는 장면이었다.  한밤중에 임금의 처소에 던져졌지만, '19금' 상황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생길 수도 없었다. 젊은 왕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검을 찬 경호원은 방안에 버티고 있었다. 연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자는 왕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이렇게 병든 임금이 용한 무녀와 한 방에 있으면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연우를 그 방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임금 몸의 액(厄) 즉 재앙을 연우가 받도록 하기 위한 주술이었다. '액받이 무녀'란 말은 그런 의미였다.  공자는 샤머니즘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유보했지만, 공자의 조선인 제자들은 이를 확대 해석했다. 샤머니즘을 '이해해서는 안 되는 영역'으로 규정하며 대결적 자세를 취한 것이다. 유교로 무장한 사대부들은 조선팔도에서 샤머니즘과 관련된 것들은 죄다 없애버리려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샤머니즘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돼!"라는 한마디로 그것을 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교 선비들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서민층은 물론 왕실에서도 샤머니즘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해를 품은 달>의 왕실처럼 조선 왕실에서도 액을 방지 또는 제거하기 위해 샤머니즘의 힘을 빌리곤 했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태종 13년 5월 1일(양력 1413년 5월 30일)에 태종은 궁궐에서 왕실 사당으로 몸을 옮겼다. 5일 뒤인 5월 6일(양력 6월 4일)에는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도 그렇게 했다. 이들이 이렇게 한 것은 '액을 피해야 한다'는 점쟁이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그보다 1년 전인 태종 12년 5월 3일(1412년 6월 11일), 태종은 경사(經師) 즉 법사 21명을 대궐로 불러 경(經)을 낭송하도록 했다. 목적은 독경을 통해 액(厄)을 내쫓는 것이었다.

  이 법사들이 승려인지 샤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불교 승려들이 액을 쫓는 의식에 동원된 적은 많지만, 이 경우만큼은 불교 승려인지 아닌지 분명치 않다.  '경'을 읽었으면 당연히 불경을 읽었을 터이니 승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조선 전기만 해도 신선교 경전들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불교 경전이든 신선교 경전이든, 액을 내쫓는 행위 자체는 샤머니즘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 불교는 샤머니즘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산신을 숭배하는 산신각을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증명한다. 샤머니즘에서는 신이 산을 통해 인간 세상에 강림한다는 믿음 때문에 산을 신성시한다. 불교 승려들이 액을 쫓는 의식에 동원된 사실 역시, 한국 불교가 샤머니즘과 명확히 구별되지 않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샤머니즘에 의존해 액을 쫓는 행위는 왕실이나 서민층에서만 유행했던 게 아니다. 겉으로는 샤머니즘을 배척하는 사대부 집안에서도 막상 급할 때는 "어디 용한 사람 없어?"라며 샤먼을 물색하곤 했다. 외형적으로는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씀하시지 않았다"며 샤머니즘을 터부시했지만, 집안에 우환이 들어 다급해지면 남들과 똑같이 샤먼을 찾곤 했던 것이다.
 왕실로서는 사대부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으니 사대부들이 뭐라 하든 말든, 왕실에서는 샤먼이나 점쟁이의 제안대로 거처를 옮기기도 하고, 법사들을 불러 액을 쫓기도 하고, 임금의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푸닥거리를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왕실로서는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무녀가 잠자는 왕을 빤히 내려다보는 방법으로 액을 쫓아내려 한 사실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왕실이 액을 쫓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은밀한 구중궁궐에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왕의 안위를 최우선시하는 왕실 사람들이라면 왕을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