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198년. 최충헌이 무사정권의 다섯 번째 지도자가 된 지 2년 뒤였다. 고려 개경 북산에서 나무를 하던 노비들 틈에서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이 남자는 최충헌의 노비인 만적. 그의 연설이 <고려사> '최충헌 열전'에 인용되어 있다.  "나라에서는 경인년 이래로 고관대작이 천민 노예 중에서 많이 일어났다. 장상(將相)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뭐 때문에 몸을 힘들게 하고 채찍 아래서 고난스러워야 하는가!"

  이 연설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만적의 말을 듣고 가슴이 울컥하여 거사에 참여한 노비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만적의 민란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백여 명의 노비들과 함께 강물에 던져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하지만 만적의 민란은 또 다른 영웅에게 영향을 주었다. '또 다른 영웅'이란 지난 11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MBC 드라마 <무신>의 김준(김주혁 분)이다.

  왕후장상의 두 번째인 '후'까지 올랐지만 실질적으로는 '왕'까지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인 김준. 그 인생 궤적을 추적해보면, 그가 신분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 '김준 열전'에 따르면, 본명이 김인준인 김준은 노비 김윤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준은 체격이 늠름하고 활쏘기도 잘하는 데다 성격까지 좋아서 사람들의 인심을 크게 얻었다. 술판이 벌어지면 거의 매번 술값을 내곤 했다.

 안정적인 시대였다면 김준은 결코 출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출세를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 분위기가 그에게 꿈을 심어주었다. 무신정변을 계기로 하극상이 일상화된 시절이었기에, 노비 같은 하층민도 신분상승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이다.  무예?친화력을 바탕으로 권력 핵심부에서 입지 굳혀
 또 무사들이 지배하던 시절인지라, 활쏘기 같은 무예가 출세의 발판이 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주인집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충헌 가문이었으니, 무예의 달인인 김준으로서는 한 번쯤 큰 꿈을 꿀 만 했다.  김준의 명성은 최충헌의 아들이자 무사정권의 여섯 번째 지도자인 최우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주인의 신임을 얻었고 주인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체격, 무예, 친화력을 바탕으로 권력 핵심부에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그런데 친화력이 너무 좋아서인지, 김준은 대형사고도 한 번 쳤다. 최우의 신임을 과신한 나머지, 최우의 애첩인 안심이와 친해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수년간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   생의 의지와 능력이 출중한 인물은 웬만해서는 죽지도 않는다. 그런 인물을 꼭 죽여야 하는 데도, 자기 옆에 두고 싶은 욕심에, 죽일 때를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최우도 그런 실수를 범했다. 최우는 김준을 도로 불러들였다. 기회를 다시 잡은 김준은 더욱 더 치열한 삶을 살았다.

  김준의 영향력은 최우의 아들이자 무사정권의 일곱 번째 지도자인 최항 때에 한층 더 막강해졌다. 최항이 권력을 잡는 데 그가 킹메이커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항의 아들이자 여덟 번째 지도자인 최의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김준과 최의의 관계는 소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왕후장상의 두 번째인 '후'까지 오른 김준  1258년, 위기의식을 느낀 김준은 주인에 대한 반역을 단행했다. 최의를 죽이고 직접 실권을 잡은 것이다. 최씨 정권이 근 30년간 몽골제국과 투쟁하는 혼란기를 틈타 최씨 정권을 붕괴시키고 무사정권의 아홉 번째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로써, 주인의 애첩을 건드린 김준의 행위 저변에 어떤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는지 명확히 드러났다. 그는 처음부터 주인의 것을 탐냈고, 그것을 갖고 싶어 했던 것이다. 김준의 능력을 활용하고 싶은 욕심에 그의 과오를 묵인한 최씨 집안은 결국 자기 집 사냥개에 물려죽는 꼴이 되고 말았다.   쿠데타 당시 김준이 왕정복고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쿠데타 이후로도 실권은 여전히 무사들의 손에 있었다. 무사정권의 지도자가 최씨에서 김준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후 김준은 형식적으로는 왕후장상의 두 번째인 '후'까지 올라갔지만, 실질적으로는 '왕'까지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실질적인 정부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노비로 태어나 오로지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출세를 이룩하고 결국 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니, 한국 역사에서 이만한 개인적 성취를 이룬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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