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국 일간지인 ‘국민일보’의 겨자씨란 코너에 실린 글을 읽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국의 한 장군이 가족과 함께 항해를 하는 중에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 안의 승객들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큰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가족들을 안심시키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폭풍이 가라 앉았습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다 안정을 되찾은 이 장군의 부인이 남편에게 볼멘소리로 질문을 했습니다. “아니 가족이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 수 있죠?” 그러자 장군은 잡자기 옆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 자기 아내의 목을 겨누며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 칼로 당신을 찌를 수도 있소. 두렵지 않소?”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칼은 무섭지만 그 칼이 내 사랑하는 남편의 손에 있는데 어찌 두렵겠어요?” 남편인 장군이 칼을 거두며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소. 우리 모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데 풍랑이 어찌 두렵겠소?”

이 글을 읽으면서 ‘문제 중심의 생각’과 ‘하나님 중심의 생각’이 이렇게 큰 행동의 차이를 가져오는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위 이야기에서 장군의 부인은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도 풍랑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손에 들려져 있는 칼이 자기 목을 겨누고 있었지만 칼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결코 칼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문제 중심의 생각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이 온통 문제 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되면 믿음의 행동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같이 문제 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혀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마다 부정적입니다. 그 문제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못한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에는 크고 작은 많은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문제들은 나의 미래를 위협하기도 하고 현재의 행복을 빼앗아 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냥 문제로 끝나버릴 때가 참 많습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항해를 하던 여객선이 대서양 한복판에서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승객들은 두려움에 떨며 절망과 죽음의 공포 속에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바다에 익숙한 선원들조차도 신음과 탄식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서도 한 중년 부인은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소원이 간절해서였는지 풍랑이 비껴가는 바람에 배는 무사히 항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배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리고 각자 갈 길을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그 중년 부인의 행동이 너무도 의아스러워 부인을 향하여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부인 그 난리통에 어떻게 그토록 평온할 수 있단 말입니까?”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둘째 딸을 잃었습니다. 둘째 딸은 지금 천국의 하나님 품에서 안식하고 있지요. 큰 딸은 보스턴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목숨을 잃는다면, 꿈에서라도 보고 싶던 둘째 딸에게 가 있을 것입니다. 풍랑이 비껴 가 항구에 도착했으니 큰 딸 곁에 가지 않겠습니까?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딸들 곁에 있게 하실 텐데 무엇이 두렵단 말입니까?”

이 부인에게 있어서 풍랑의 곤고함은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 자신이 봉착한 문제를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이 문제를 통하여 자신에게 친히 이루실 하나님의 하실 일을 묵상했습니다. 이 깊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그녀를 평화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전도서 7:14) 생각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가 정말 중요합니다. 문제를 생각할 것인가 하나님을 생각할 것인가? 문제 중심의 사고를 할 것인가 하나님의 중심의 사고를 할 것인가?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복이 보인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생각하나의 차이였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버티고 있는 자신들보다 배나 더 큰 거인들을 보고 절망했습니다. 이들의 문제 중심의 생각은 결국 백성들의 생각에 전염되었고 ‘우리는 못 들어간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그 생각대로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가나안의 상황을 보고 온 두 명의 정탐꾼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아낙자손(거인)의 문제보다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능히 들어가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생각은 결국 그 생각대로(믿음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 가나안을 밟게 되는 유일한 출애굽 1세대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문제입니까? 하나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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