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나라인 몽골제국은 전 세계를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들에게 짓밟힌 지역은 중국부터 시작해 동유럽까지로, 유라시아 대부분이 몽골의 말발굽에 밟힌 것이다.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동을 짓밟고 동유럽까지 휩쓴 몽골 기병대에도 콤플렉스는 있었다. 당시 몽골 수도인 대도(현재 북경과 북경 약간 위쪽 지역)의 코앞에 있는 고려에 대해서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몽골은 고려를 부마국(사위 국가)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강화조약의 결과였다. 군사적으로는 승부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고려가 세계 최강 몽골을 방어한 것은 특유의 민족주의 기질 때문이기도 하고 산악 위주의 지형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엇일까.  몽골이 고려 침공을 개시한 1231년. 몽골군은 초반부터 희한한 경험을 했다. 소수의 고려 특공대가 몽골 대군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데도 별다른 제지를 가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 <고려사> '김경손 열전'에 묘사돼 있다. 고려 장교 김경손이 이끄는 12인의 특공대가 몽골 대군을 두 차례나 퇴각시킨 것이다.

  김경손 특공대는 국경 지대인 정주성과 귀주성에서 몽골군을 괴롭혔다. 이들은 성곽을 포위한 몽골군 진영을 헤집고 다니며 적군을 교란했다. 몽골 대군은 이들 12인에 밀려 두 차례나 퇴각하고 말았다. 이런 기적에 힘입어 김경손은 귀주성 수비를 책임지게 됐다.  퇴각했던 몽골군이 되돌아와 귀주성을 몇 겹으로 포위했지만, 김경손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20일 이상 대항한 끝에 결국 몽골군을 막아냈다. 몽골군은 귀주성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전투력이 강한 군대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난 28, 29일에 방영된 MBC 드라마 <무신>에서도 김경손 특공대의 활약상이 묘사됐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역사적 사실들을 차근차근 따져보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는지 수긍하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 속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농민군이었다. 평소에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나면 출동하는 군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 병사들의 전투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장교가 여러 명의 병사들을 상대하는 게 가능했던 것은, 장교는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데 비해 일반 병사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경손 특공대는 일반 병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들은 특수훈련을 받은 군인들이었다. 이들은 군대 조직이 아닌 다른 곳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그래서 일반 특공대와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몽골군이 이들을 보고 당황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 특공대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단서가 있다. 그것은 김경손이 항상 검정 옷을 입었다는 '김경손 열전'의 기록이다. 검정 옷, 즉 조의(?衣)를 입거나 검정 허리띠를 착용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고구려 수행자 군단인 조의선인(?衣仙人)이나 신라 수행자 군단인 화랑의 후계자들이었다.

  검정 옷을 입고 있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김경손 특공대는 조의선인과 화랑의 맥을 잇는 신선교 수행자 집단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선교 수행자 출신으로서 고려 정부군 내에서 활동하는 군인들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군대 안의 종교인들이 모여 별도의 조직을 꾸린 것과 같다.  이들은 일반 농민군과 달리 평상시에도 군사훈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조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출현 앞에 몽골군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전투력이 강한 군대보다도 무서운 것은 신앙심이 강한 군대다. 두 손에 칼을 쥔 군대보다는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경전'을 쥔 군대가 더 무서운 법이다. 신선교 수행자 군단은 둘 다 갖춘 부대였다. 몽골군이 "사람이 아니다"라며 감탄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웬만한 나라의 정부군은 이들을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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