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과 사명을 분명히 구분하여 알 필요가 있다. 소명은 부르심을 받는 것이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명령을 받고 나가는 것이 사명이다. 소명과 사명을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소명과 사명은 분명히 다르다. 소명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그 자체라면 사명은 그 부르심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한다. 그래서 소명감이란 내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을 말하고, 사명감이란 하나님께서 내게 이것을 하라 명하셨다고 깨닫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소명과 사명은 때로는 시차를 두고 주어지기도 하고 또한 동시에 주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주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 단지 나를 따르라고만 말씀하셨지, 무엇을 위해 주님을 따라야 하는 지는 그들이 훈련받고 사도로 세움을 받은 다음에 말씀에 주셨다. 또 다른 예로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종인 모세를 들을 수가 있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의 신분이었지만 히브리 노예이자 유모인 진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랐다. 그는 바로의 왕궁에서 어머니의 민족사상을 듣고, 히브리인의 교육을 받음으로 사명을 배우게 되었다. 어느 날 자신과 같은 민족이 이집트인에게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 사명감으로 인하여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전락하게 된다. 사명감만 있을 때에 나타난 현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명감에 불타서 실수를 범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는지 모른다. 사명감에만 불타면 수단과 목적을 판단하지 못하는, 아주 어리석은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나무를 예로 들어보자. 대나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자라나는 나무류의 식물이다. 대나무의 성장속도는(하루 최대 60cm)는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좌우된다. 싹이 난 뒤 약 4~5년 뒤에는 전부 자라게 되는데, 전부 자란 대나무의 길이는 평균 20m정도 이며, 어떤 대나무는 최고 40m까지 자라기도 한다. 대나무는 4년에서 5년 동안 땅 밑 어두운 곳에서 물밑작업을 하는데 이때 뿌리를 내리는 작업을 차근차근 준비 한다. 그런 후에야 급성장하는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다.

 학교의 반복되는 수업 시간 속에서 선생님 말씀에 잘 순종하여 착실히 훈련하고, 인내를 가지고 잘 준비하는 학생은 미래가 활짝 열린 고속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분명한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 스피드를 내도 사고당하지 않고 목적지에 남들보다 더 빨리 도착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의 잘못된 열매들을 통해 교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 수가 있다.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반복된 예배 속에 자신을 훈련하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채 알기도 전에, 급한 마음으로 사명감에 불타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는지...... 또한 얼마나 주변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지......
오늘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주신 영광스런 교회에 나타나는 불미스런 일들은 교육받지도 못하고 훈련받지도 못한, 그래서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타난다. 즉 하나님과의 진정한 개인적 만남이 없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진통을 격고 있는 것이다.

 소명을 받을 때의 상황과 사명을 받을 때의 상황은 다르다. 사람들이 소명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권능으로 임하신다.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고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부르심에 감격해서 응답한다. 소명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사명이란 말은 라틴말로 미씨오(Missio)란 말인데 이 말은 보낸다는 말이다. 여기서 영어의 미션(Mission) 즉 ‘선교’란 말이 나왔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터 선교적인 사명을 받은 선교사(Missionary)인 것이다. 일국의 원수가 외국에 사절단을 보낼 때는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보낸다.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태어난다.

 사도바울은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이다. 만약 당신이 인생의 목적을 상실했다면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며, 사명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사명을 발견하고 인생을 살아야한다.  소명에 의해 나아온 사람은 반드시 사명자로 쓰신다. 사명자의 고백은 이와 같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의 불행은 사명은 불타고 있는데,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훈련과 교육을 받지 못해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함으로, 일어나는 일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교우들이여!

 40년의 광야 훈련을 통해 지상에서 가장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온유한 사람이 된 모세 같이 잘 인내하고 훈련받고 마침내 하나님이 쓰시기에 좋은 그릇으로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교회가 작은 천국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며, 억눌리고 고통당하는 자나, 슬픔을 당한 자, 가난한 자들이 교회에 와서 큰 위로를 받고 다 천국백성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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