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세기에 환생한 대한민국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 <닥터 진>에서, 주인공 진혁(송승헌 분)은 낯선 19세기 세상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진혁을 괴물 취급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의 진심과 기술을 인정하고 있다. 진혁은 어느새 활인서(서민 의료원) 의사에서 내의원(궁궐 병원) 의사로 성장했다.  진혁의 성장과 함께하는 여인이 있다. 21세기 세상에서 진혁의 애인이었던 홍영래(박민영 분). 몰락한 양반집 딸인 영래는 처음부터 왠지 진혁에게 이끌려 이 남자와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방송분에서 정식으로 내의원 의사가 되기까지, 영래는 비공식적으로 진혁을 돕는 역할을 했다. 진혁이 활인서에 근무할 때도, 내의원에 들어간 뒤에도 영래는 비공식적인 도우미였다.    "내의원 의사가 되기까지 홍영래가 수행한 역할은 오늘날의 어떤 직업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간호사"라고 대답할 것이다. 맞는 대답이다. 하지만, 100% 정답은 아니다. 간호사에게 행정 사무를 맡기는 병원들도 있지만, 오늘날의 간호사는 기본적으로 의사의 진료를 돕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의녀는 그렇지 않았다. 간호사 업무를 수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그것만 담당한 것은 아니었다.

   임금에게 드릴 약을 조절하고 그 옥체를 보호하는 역할은 내의원 의사의 몫이었다. 내의원 의사를 보조하는 것은 의녀의 몫이었다. 하지만, 의녀는 단순히 약을 조절하고 옥체를 보호하는 임무만 맡지는 않았다.  의기(醫妓)라고도 불린 데서 알 수 있듯이, 의녀는 기생 역할도 수행했다. '의기'에서 기생을 의미하는 '기'자가 뒤에 붙은 것은 이들이 본질적으로 관기(관청 기생)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술을 담당하는 관기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의기의 업무 가운데서 기생 역할이 꽤 큰 비중을 차지했음을 반영하는 대목이다.

  관기는 여자 공노비(관노비)의 보직 중 하나였다. 의녀 역시 관청에 얽매인 공노비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기생 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다가 아니다. 의녀는 기생 외에 또 다른 역할도 수행했다. 그것은 궁궐 경찰 역할이었다. 이들은 사법기관이 궁궐 여성들을 잡아들일 때 '체포조'의 임무를 수행했다. 환자 치료와 기생 업무에 더해 경찰 사무까지 담당했으니, 의녀는 상당히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대궐에서 여성을 체포할 수 있는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였다. 감찰궁녀 외에도 금부나장과 의녀가 그런 일을 담당했다. 금부나장은 고급 사법기관인 의금부의 하급 관리였다.

 의녀들은 가슴에 침 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궁궐 사람들을 치료하기만 한 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체포조로 돌변해서 궁녀들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던 것이다. 궁녀들은 이들을 '의녀대'라 불렀으며, 의녀대의 출현을 호랑이 떼의 출현만큼이나 무서워했다. 때에 따라서 감찰궁녀가 체포할 때보다 의녀들이 체포할 때 궁녀들의 공포심이 훨씬 더 컸던 모양이다. 가슴에 침 주머니를 찬 의녀들이 우르르 달려든다면, 웬만한 궁녀들로서는 두려움을 감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의녀와 궁녀가 한 식구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소속이 달랐던지라 동료의식이 약했다. 그렇기 때문에 의녀들은 별다른 심리적 부담 없이 궁녀들을 체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의녀들은 궁녀들이 몸이 아플 때는 물론이고 죄를 지었을 때도 궁녀들을 방문했다. 때로는 팔을 비틀어 사람을 체포하고 때로는 바닥에 눕히고 침을 놓아주었으니, 궁궐 여성들의 눈에는 의녀들이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을 것이다. 궁궐 여성들은 의녀들을 볼 때마다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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