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분주합니다.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과 일들의 연속입니다. 아직 피곤이 풀리지 않은 몸을 잠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좀 더 자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할 일이 태산 같기 때문입니다. 아직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는 아이들과 전쟁이 벌어집니다. 집안은 엉망이 되어 있는데도 하나도 치우지를 못합니다. 일하러 나갈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입니다. 일터로 가는 마음 역시 분주하기는 이를데 없습니다. 차가 정차하는 틈을 이용해서 재빠르게 화장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운전하면서 손에 커피도 들려 있고 간단한 아침 식사도 해야 합니다. 하루에 8시간에서 10시간 이상 일하는 일터에서는 일 외에도 아무 생각도 하지를 못합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몸입니다. 집에 가서 쉬고만 싶지 다른 것도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면 할 일이 쌓여 있습니다. 자녀들도 돌보아야 합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노곤한 몸을 소파에 기대고는 TV를 보거나 비데오를 봅니다. 하지만 어찌나 졸리운지 드라마 하나 제대로 다 보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루는 끝나고 맙니다.
현대인들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차를 타고 가는 시간, 혼자 일하는 시간, 때로는 운동하는 시간에 홀로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실 셀폰이 울립니다. 차는 타자마자 래디오를 킵니다. 혼자 있다고 홀로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진정 홀로 있는 시간은 고요함이 있어야 합니다. 고요함이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주한 모습의 연속일 뿐입니다.
저는 지난 며칠간 모처럼 고요함 속에 홀로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늘 하고 싶던 것이었습니다. 켈리포니아에서 목회를 할 때는 1년에 두 세 차례 늘 한적한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는 곳을 좋아했습니다. 넓은 예배실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에 마음에 깊은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계곡 구석에 있는 개인 기도실은 고요함 그 자체였습니다. 때로는 소리를 내어 큰 소리로 기도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쓰면서 말입니다. 내가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내가 침묵하면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말하는 것으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말은  남을 지배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할 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들어야 한다는 강제성이 있습니다. 그런 강제성이 서로에게 있으니 때로는 사람과의 만남이 피곤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말 할때 하나님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말씀하셔도 우리가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침묵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저는 사실 이번 기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기도도 묵상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셀폰도 하루 종일 꺼놓았습니다. 밤에만 잠시 집사람과 통화하는 정도였습니다. TV도 래디오도 멀리했습니다.
고요함 속에 홀로 있는 것의 유익함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의 내적인 충만함입니다. 주님은 그 바쁜 사역의 분주함 속에 홀로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지셨습니다. 새벽 미명 시간에 홀로 산에 가시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피곤해서 자고 있는 밤 시간에도 주님은 고요히 홀로 있는 장소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순간에도,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순간에도 주님은 흔들림 없는 내적 충만함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자기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 뜻이 있고 아버지의 뜻이 있습니다. 내 뜻은 가능하면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해서는 안 될 일은 안하는 것이며,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입니다.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킬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자유는 바로 고요함 속에 홀로 있는 곳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줍니다.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슴을 잡기 위해 달리다 보면 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산인지를 모릅니다. 그 산에 어디 쯤에 와있는지 조차도 알지 못합니다. 하루 하루에만 분주하고 바쁘다 보면 내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 분간이 가지를 않습니다. 고요함 속에 홀로 있다보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보입니다. 올바른 길로 왔는지, 아니면 곁길로 왔는지도 보입니다. 과거를 알면 미래의 길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정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꼭 여러 날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1년에 몇 차례 만이라도 고요히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아예 집이나 일터와 뚝 떨어진 곳에 잠시 머물면 좋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일이 없는 날 차를 가지고 한적한 곳을 드라이브 할 수도 있습니다. 혼자 찻 집에 앉아 한 두시간 묵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요함 속에 홀로 있을 때 일어나는 영적인 내적 변화를 체험만 한다면 누구나 그런 시간을 사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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