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성인이 되거나 사회로

남자들이 성인이 되거나 사회로 나갈 때 준비해야 할 많은 것들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넥타이다. 직업과 관계없더라도 집안이나 사회의 많은 경조사에 참여하려면 넥타이 하나, 둘 정도는 보통 준비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넥타이를 맸으며 왜 매기 시작했을까?

 넥타이는 기원전 50년경 고대 로마 병사들이 목에 휘감아 착용한 ‘포칼(Focal)’ 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포칼은 거의 목도리에 가깝고 현대의 넥타이 모양과 같은 패셔너블한 액세서리로서 원형이 완성된 것은 160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다. 당시 터키전투에서 승리하고 루이 14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파리에 개선한 크로아티아 지방의 용병부대가 앞가슴에 ‘크라바트(Cravate)’라는 멋진 장방형의 천을 매고 있었다. 그 맵시에 반한 프랑스의 귀족들 사이에서 이것이 크게 유행하게 되었으며 넥타이의 기원이 되었다. 프랑스어로는 넥타이를 크로바트라고 하는데 이것은 크로아티아의 프랑스어인 크로아뜨가 차차 변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명칭은 오늘날에도 넥타이의 보다 점잖은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
  크라바트는 프랑스 혁명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가 19세기초에 다시 나타났다. 스타일은 매는 사람의 직업이나 기질에 따라 달랐다. 로맨틱한 남자들은 시인 바이런이 맨 것 같은 길게 나부끼는 넥타이를 맸다. 좀 점잖은 사람들은 목에 꼭 조이게 맸다.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남성 의상의 주류는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옮겨지고 그와 때를 같이하여 '크라바트'라는 명사 대신에 '넥타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패션이 런던 스타일로 바뀜에 따라 복장의 실루엣도 현대에 보다 가깝게 되고 경쾌함을 띠게 되었다. 크라바트보다 심플하고 가볍게 묶게 되었다. 1815년부터 30년까지의 런던 패션, 나아가 유럽의 패션은 보우 브러멜이라는 디자이너가 주도하던 시기였다. 브러멜은 크라바트를 독특하게 매는 방법을 창안하였는데 아무도 그 방법을 흉내낼 수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사례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전수를 받을 정도였다.
 1850년대에는 크라바트 앞부분의 묶는 부분만을 독립시킨 나비넥타이가 등장하고 이에 따라 '두르는 것'에서 '묶는 것'에로의 변화가 보다 강하게 나타났다. 1890년경에 현재의 넥타이와 동일하게 대검과 소검의 형태로 묶어 느어뜨리는 식의 '포 인 핸드 타이'가 등장했다. 이 '포 인 핸드 타이'라는 것은 사두를 세운다는 의미로 마부가 말고삐를 다루기 편하도록 고안된 매듭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포 인 핸드 타이'는 영국 신사 오스카 와일드가 창안했다고도 말해지는데 이 묶기 쉽고 간단한 스타일의 넥웨어는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넥타이의 주 스타일로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넥타이 매듭의 종류에는 포인핸드 노트, 프레트 노트, 하프윈저 노트, 윈저 노트, 스몰노트, 프린스 알버트 노트, 딤플 등이 있다.  포 인 핸드 노트(Four-in-hand Knot)는 가장 일반적인 매듭법으로 매듭 밑 길이가 손바닥 길이의 4배 정도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든 칼라 디자인에 잘 어울려 가장 무난한 매듭법이다.  윈저 노트(Windsor Knot)는 영국의 귀족 윈저공이 주창한 디자인으로 넥타이 돌림이 많아 넓고 두툼한 것이 특징이다.  하프 윈저 노트(Half Windsor Knot) 는 윈저 노트의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하는데 타이의 두께가 두꺼울 때 하는 매듭법이다. 윈저 노트에 비해 돌림이 한 번 적은 것으로 윈저칼라나 와이드칼라에 잘 어울린다. 더블 노트(Double Knot)는 감기를 두 번한 매듭으로 도톰한 느낌이나 개성있는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을 때 좋은 매듭법이다. 더블 크로스 놋트(Double Cross Knot)는 40대 이상인 신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매듭법으로 중후한 멋을 풍긴다. 와이드칼라나 윈저칼라, 모든 얼굴형에 잘 맞는 매듭법이다.

 넥타이에 담긴 사회적 통념들도 많다. 넥타이란 이름엔 “목이 묶여있다”는 뜻이 함축돼 있는 바, ‘넥타이공장’은 사형 집행장을 이르는 교도소 은어로도 사용된다.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마라비아는 ‘고유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단 하나의 장식품이 넥타이’라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중 패튼 장군은 독일에 대패한 미군의 사태를 수습하고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복장을 단정히 하고, 새끼줄이라도 좋으니 넥타이를 매라’고 지시했다. 이후 패튼 부대는 모든 전쟁사를 통해 가장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반면 2004년 12월 넥타이를 조여 매면 뇌의 혈류 속도가 떨어져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는 한 병원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체감 온도가 약 2도 내려가기 때문에 난방비를 평균 6% 이상 절약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노타이 근무를 도입한 대기업만 50곳이 넘었다. 환경연합은 “한국의 경우, 직장인들이 노타이 패션으로 일하면 원자력발전소 2기의 전력생산량에 달하는 약 29억kwh(약 3000억원어치)의 전기를 줄일 수 있다는 에너지관리공단의 추산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2008년 6월 4일자는 미국 직장에서 ‘노타이 문화’가 정착되면서 관련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갤럽의 최근 조사 결과 평소 넥타이 차림으로 일하는 직장인은 전체의 6%에 불과했다. 이 신문은 “넥타이가 더 이상 권위와 신뢰의 상징이 아니다”며 “종전엔 넥타이가 회사 최고경영층을 연상시켰으나 이젠 회계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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