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신국민학교 2회 졸업생입니다. 졸업하기 전 그러니까 6학년 가을에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수학여행비는 900원이었는데, 그 당시 시골에서 900원은 큰돈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상의해서 우리 반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 옆에 있는 밭에 콩을 심었습니다. 틈나는 대로 물을 주고 가꾸었습니다. 가을에 타작을 하여 팔았더니 개인당 200원을 보조할 수 있었습니다. 6학년 학생들이 콩 농사를 지어 수학여행비 일부를 마련하였던 그 당시가 생각날 때마다 지금의 학생들보다 어른스러웠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반 학생 즉 6학년 전체 학생이 총 52명이었는데 개인이 마련해야할 700원을 마련하지 못해 수학여행을 포기한 학생이 10여명이나 되어 참 안타까웠습니다. 저도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집안 농사일을 열심히 거들었습니다. 특히 고구마를 캐던 때였는데, 고구마 진액이 손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새까맣게 고구마 진액이 묻은 손바닥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 주먹을 쥐거나 손을 감추면서 수학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저의 형은 그 당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동생이 수학여행을 온다고 하니 동생을 만나고 싶어 우리의 일정을 알아냈습니다. 형은 창경원으로 찾아 왔습니다. 지금은 핸드폰을 다 갖고 있으니까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서로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가을에는 창경원을 구경하기 위해 나온 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찾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거의 2시간이나 헤매던 형은 포기하고 가려다가 마지막으로 돌아본 순간 저를 보았습니다.

형은 당시 외삼촌댁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외삼촌댁은 미아리고개에서 언덕으로 더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 당시 시내버스는 미아리고개 입구가 종점이었습니다. 종점에서 내린 형은 저에게 택시를 타고 갈 것인지 제과점에서 빵을 먹고 걸어갈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즉, 종점에서 외삼촌댁까지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30원이면 올라갈 수 있는데 택시를 탈 것인지 아니면 그 돈으로 개당 5원하는 단팥빵 6개를 사서 나누어 먹으며 걸어갈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연히 단팥빵을 먹으면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에서 3마일 정도 걷는 것은 매일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당시 외삼촌댁은 너무나 가난했습니다. 형은 아침에 죽을 먹고 학교에 가는 날이 한 달이면 20일 정도였습니다. 아침이 죽이었으니 당연히 도시락도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형은 매일 배가 고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동생이 단팥빵을 먹으며 걸어가자고 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저의 동네에 전기가 들어온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늦가을이었습니다. 저는 호롱불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호롱불에서 공부하던 6학년 학생에게 서울의 네온사인은 환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재봉틀 네온사인은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재봉틀이 돌아가고 바늘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다가 넋을 잃었습니다. 한참 만에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까 우리 반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없이 이길 저길 뛰어 다녔습니다. 간신히 우리 반 학생들을 찾은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신기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중학교 2학년 가을에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습니다. 석굴암을 보러가는 날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출발해야 했습니다. 새벽이라 날씨가 매우 쌀쌀했습니다. 출발하는 곳에 먹을 것을 파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부터 음식을 팔았습니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콩나물국밥이 제일 인기가 있었습니다. 콩나물국밥이라고 하지만 특별한 것이 아니고, 콩나물국에 한 주걱의 밥을 말아주는 것이었습니다. 한 그릇에 30원이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이미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저는 30원의 거금을 내고 먹을 것인지 참을 것인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콩나물국밥집 앞에서 계속 서성거리다가 결국 사먹지 못하고 석굴암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석굴암을 향해 걸어가는데 새벽 공기는 차갑고 배가 고프니까 아까 사먹지 못한 콩나물국밥이 왜 그렇게 맛있게 생각되는지 사먹지 못한 일이 그렇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콩나물국밥을 보면 사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때 사먹었다면 아쉬움이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은 콩나물국밥 정도는 고민하지 않고 사먹을 형편이 되었습니다.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망설이다가 놓쳐버렸다면 얼마나 후회할 것인가? 나아가 전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망설이다가 전도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그가 천국에 갈 기회를 잃어버렸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새해에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기회를 최대한 살려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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