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의 손주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 아이가 아니다.
늘 숙제를 하는 것을 보면 도와주는 아내가 더 공부를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손주는 가만히 있고 아내가 답을 다 달아주는 모습을 종종 본다.
“왜”, “도대체”,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머리가 안 좋은 거니”하고 핀잔을 줄때가 많
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 이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이 차츰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학교에
서 “왜... 그렇게 공부를 못하니” 보다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어떻
게’... 하면 이 문제를 잘 풀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숙제를 잘 할 수가 있을까?, 어
떻게... 하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를 터득 하고 부터는 아이가 달라졌다.
오늘 저는 ‘왜’ 라는 말보다는 ‘어떻게’ 라는 관점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일들이 열릴까를 생각하면서 글을 쓸까 한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는 천만가지의 신경중추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신경중추는 무
수히 많은 전자 튜브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하잘 것 없는 지렁이의 지능을 갖는 기계를 만들려 해도 천 만 개의 튜브가 필
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할 때 그 많은 것을 우리의 머리 속에 넣으셨
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고작 두뇌의 10% 정도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우리 인간이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많은
것을 개발해서 행복하고 기쁜 이민 생활을 영위했으면 한다.

우리는 수많은 만남을 가진다. 어떤 이는 만나면 좋지 못한 인상으로 불만과 불평, 남에
대해 안 좋은 말로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고, 또 어떤 이는 만나면, 즐거워지고, 생기가 돋
고, 희망이 생기며 삶에 대한 열정이 생긴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만남을 가진다.
이 두 가지의 만남에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왜"...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고 후자는 "어떻게"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의 경우 일 것이다.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났을까?"
"왜 우리는 부자가 못 되었을까?"
"왜 하필 나야?" 라는 과거형이고,
"어떻게 하면 되죠?"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에게 잘 할 수 있을까요?"
라는 미래지향형의 차이라고 여겨진다. 때로는 부질없는 과거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 할 때
도 있고, 그것으로 인해 절망하고,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믿음에 금이 가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과거는 미래를 향한 반성의 계기로 삼고, 현재에 만족하는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하
리라 본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도울까? 어떻게 내 마음과 정성을 다 할까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
상은 보다 희망차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보이는 최초의 반응으로 (왜 이런 문제가 생긴
거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지?)라고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그 후에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아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세계에 사는 미약한 개미는 먼저 (어떻게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개미 세계에는 (유죄)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라는 단어가 아닌
“어떻게”라는 단어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그보다 못하
다면 부끄럽지 않은가! (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라고 자문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는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인간 세계는 (왜) 라고 묻는 사람들이 지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
가는 (어떻게) 라고 묻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_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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