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번 사는 인생이 불행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도 나름대로 행복을 느끼며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램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 해를 정리하는 12월이다. 올 한 해가 기대했던 대로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새해를 계획하고 준비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삶에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랍비의 개 한 마리가 자기 ‘견생’을 깊이 생각하다가 “나의 행복은 꼬리에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 행복이라는 꼬리를 잡으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한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꼬리를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제자리만 빙빙 돌뿐이다. 분명히 잡힐 것 같은데 놓쳐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그 개는 힘을 다 소진하여 쓰러지게 된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늙은 개가 행복이라는 꼬리를 잡으려다 쓰러진 개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여보게! 젊은이. 나도 자네처럼 열심히 행복이라는 꼬리를 잡으려고 돌고 또 돌았지만 결국에는 잡지 못하고 한 가지 사실만을 깨달았다네. 행복이라는 꼬리는 잡으려고 돌면 돌수록 어지러울 뿐이지만, 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리면 자동적으로 나를 따라오는 것이 행복이라는 꼬리라는 것일세.”행복 자체를 잡으려고 살면 행복은 얻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면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행복이다.
 바울은 이 행복의 진리를 분명하게 알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그도 무던히 잡으려고 애쓰던 것들이 많았다. 정통 유대인 가문 출신, 최고의 학부에서 공부를 했던 일, 당시 가장 힘이 있는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일 등 이 세상 최고의 것을 얻으려고 그는 밤잠을 자지 않고 뛰어다녔다. 그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의 피곤과 무의미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는 그의 인생의 가치가 달라졌다. 그에게는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그 부름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인생의 행복과 만족이 늘 그의 마음에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올 한해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새해의 목표를 지금부터 차근차근히 생각하고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두 번째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행복해서 웃는 사람이 있는 반면 웃어서 행복한 사람이 있다” 우리는 분명 행복하면 웃을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행복한데 슬퍼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웃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우리가 사는 이민 생활은 웃을 일이 별로 없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시간까지 쉼 없이 일해야 한다. 그것도 매상만 잘 올라간다면 육체적인 피곤함은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매상까지 작년보다 계속 떨어진다면 그 피곤은 가중되기만 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의 길이는 같지만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길이는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삶은 양적인 삶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질적인 삶도 분명 있다. 똑같은 어려움을 겪지만 어떤 사람은 불평으로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오히려 감사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란 주재 미국 대사가 왕궁을 방문하게 되었다. 왕궁 현관에 있는 유리 모자이크가 있는데 오색등에 조명된 그 작품은 황홀한 정도로 아름다웠다. 옆에서 안내를 하던 사람에게 어떻게 제작이 되었는 지를 물었다.

  그때 안내인이 이렇게 설명을 했다. “이 모자이크는 깨진 유리 조각들도 제작을 한 것입니다. 테러분자가 폭파한 건물에서 깨진 유리들을 모아 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사는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 지 모른다. 우리가 오늘 힘든 현실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깨진 유리 조각으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실 수 있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삶이 마치 깨진 유리처럼 조각조각이 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은 ‘내일’이라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 보면 웃을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그에게 웃지 못하는 형편은 없었다. 모든 상황에서 웃을 수 있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었고 이 땅에서 많은 것을 누리지는 못했어도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2012년 한 해를 정리하는 이 시점에 나는 과연 행복했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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