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에 있는 TV 치워야해...

 결혼 7년차 K씨 부부는 요즘 안방에 새로 들여놓은 TV 때문에 논쟁이 뜨겁다. 남편 K씨는 일찍 귀가하는 날에도 마루 소파에 드러눕다시피 TV만 보다가 잠든다. 9시 뉴스를 본 뒤엔 드라마·토크쇼에 아예 심야뉴스까지 재탕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TV를 켜놓은 채 소파에서 곯아떨어진 모습을 보고 아내가 잔소리를 좀 했더니 K씨는 아예 새 TV를 장만해서 침대 맞은편에 달아놓았다. 그 뒤로는 안방에서 잠들때까지 TV 삼매경에 빠졌다. 부부 사이의 훼방꾼이 안방까지 침범한 것이다.

 부부문제를 다루는 학자들 사이에선 ‘TV는 열정의 독약’이라는 말을 쓴다. 이탈리아의 살로모니 박사팀이 523쌍의 부부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침실에 TV가 있는 부부는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성생활의 빈도가 절반 수준이었다. 이런 양상은 중년의 부부에서는 더욱 심각하게 관찰됐다. 여전히 어른들은 아이들이 TV에 중독되고 해가 될까 노심초사한다. 그러나 TV에 중독된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부부 사이에 있어서 과도한 TV시청은 바보상자보다 더 위험한 독약과도 같다.

 부부 사이의 친밀도를 가늠할 수 있는 훌륭한 지표는 두 사람이 평소에 얼마만큼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나 행동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느냐다. 굳이 사랑한다는 표현만이 아니라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아이들 얘기, 공통의 관심사, 취미, 가벼운 스킨십, 열정적인 성행위 등이 어우러져 부부의 친밀도를 높인다. 실제로 섹스리스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치료의 준비단계에서 TV를 끄고 한 시간 동안 침대 위에서 각자 책을 보든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들은 처음에 무척 어색해한다. 그만큼 TV가 둘 사이를 갈라놨다는 얘기다. TV를 끈 채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어색하다면 이는 부부 사이의 의사소통과 친밀도가 그리 원만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TV가 없으면 함께 있지 못하는 부부들은 배우자 옆에 있더라도 서로 정서를 공유하는 게 아니라 TV가 만들어내는 인위적인 감정을 함께할 뿐이다.  배우자와 눈빛도 마주치지 않은 채 전자 제품과 감정을 교류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그런데 남편은 일에 지쳐 TV를 보면서 휴식 좀 하는데 그것조차 간섭받아야 하느냐며 항변한다. 하지만 과다한 TV시청은 휴식조차 되지 못한다. 꼭 부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바로 나 자신의 휴식과 심신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TV나 컴퓨터, 인터넷을 일정 시간 멀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꼭 부부 사이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현대인에게 지나친 TV시청은 운동부족으로 이어져 건강을 해치는 주요 인자다. 가만히 앉아 하루 평균 3시간(일주일 20시간) 이상 TV를 보는 게으름뱅이는 발기부전의 위험성이 30%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TV의 해악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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