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힐리 쇼일만>이 쓴 <빠빠라기>라는 책을 보면 처음으로 문명세계를 방문한 남태평양 사모아 섬의 추장 <투이아비>가 문명세계의 시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글이 나옵니다. ‘나는 빠빠라기(문명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주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웃으며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나를 그들은 비웃었다. 그들의 마음은 잘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나이쯤은 알고 있어야지..”라고 그들은 흔히 말했다. 나는 말없이 생각했다. “나이는 모른 채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은데...” 몇 살이냐는 것은 요컨대 밤하늘의 달이 생겨서 둥글어졌다가 다시 사라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냐는 말이다. 열두 번 보면 한 살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런 계산에는 아주 큰 해로움이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일생동안 대충 몇 번 정도의 달 바뀜을 보는가를 알고 있고, 누구나 얼추 이 계산을 맞춰보고는 만약에 자신이 벌써 많은 달 바뀜을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틀림없이 멀지 않아 죽을 것이다” 그러면 이미 어떠한 기쁨도 사라져버리고, 그는 멀지 않아 진짜 죽는다...’ 이런 말을 하면서 그 <투이아비> 추장은, 자기들은 시간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시간 때문에 고민한 적도 없고, 시간에 쫓겨본 적도 없고, 시간에 불만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그저 자기들 일생동안 다 쓰지 못할 만큼 시간은 충분하다고.., 그러면서 빠빠라기(문명인)들의 시계와 달력을 때려부셔서 불쌍한 빠빠라기들을 시간으로부터 구해줘야 한다고.., 이 추장은 그 책에서 강변하고 있습니다.

새해입니다. 우리나라 인터넷 뉴스를 보니까 새해 1월1일 동해에 떠오르는 해맞이를 하면서 새해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고, 동해로 수십만명이 몰려갔다가 폭설이 쏟아지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엄청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맞이를 하면 새해일까요? 카렌다를 바꾸면 새해일까요? 새 옷을 입으면 새해일까요? 새해면 정말 새것이 되는 것일까요? 솔직히 더 헌것이 되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흔히 과거, 현재, 미래라고 이해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은 원래 헬라철학적인 시간의 개념입니다. 시간을 일직선상에 올려놓고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간다는 것이지요. 또 동양적인, 특히 불교적인 시간의 개념은 둥근 원처럼 빙빙 도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둥그런 원으로 모든 시간관과 세계관을 정립하기에 영생이라는 개념도 윤회설로 표현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란 지나갔다고 해서 새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원으로 돈다고 해서 새해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의 주체인 내가 새것이 되어야 정말 새해가 되는 것이지요.

콜로라도의 산을 무지무지 사랑하는 한 성도님의 안내로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겨울 산을 가 보았습니다. 밟히느니 온통 눈 천지이고 춥고 건조한 날씨 탓인지 전혀 녹지를 않아 촉감이 매우 부드러웠습니다. 눈 덮인 산야의 아름다움과 순백함, 그 순백함을 아이작의 꼬챙이로 무참히 짓밟는다고 생각하니 처음에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 역시 생태적으로 자연에 대한 ‘잔인성’(타락)을 공유한 인간이기에 그 ‘망설임’은 일순간의 위선에 불과했을 뿐, 잠시 후 ‘눈의 자연’을 마음껏 유린하며 즐기면서도 한편, 편린의 양심 탓인지 눈 위에 찍히는 내 발자국으로 인생의 족적을 더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이 족적이 오늘로 이어진 어제이고 내일로 이어질 오늘이기 때문이지요. 바른걸음으로 찍힌 발자국은 역시 걸음나비도 고르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온당한 족적입니다. 미끄러운 탓도 있었지만 비틀거리며 찍어놓은 자국은 역시 불안하고 뒤틀리며 얼마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종종종 걸어봤더니 발자국이 겹쳐서 형체도 분간할 수 없고 금세 숨이 차 올랐습니다. 삶에서 지혜를 잃고 서두르다가 어느새 황황히 도착한 인생의 종착점에서 뒤돌아 본 비뚤어지고 허망한 족적이지요. 뒷걸음도 쳐봤습니다. 발자국의 걸음나비나 방향이 맞을리 없고 얼마쯤 남아있던 발자국마저 짓뭉개지고 말았습니다.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서 뒷걸음질치면 어렵사리 남긴 족적마저도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이치지요. 뛰어봤습니다. 공연히 분수에 지나치다가 미끄러져 낭떨어지로 떨어질 뻔 했습니다. 오기나 도약에 가득 찬 인생은 실족을 자초할 뿐 이였습니다....

흔히들 행적이 묘연할 때는 ‘눈 속에 남겨진 기러기발자국’에 비유합니다. 눈 위에 찍어놓은 기러기발자국은 눈이 더 오거나 녹으면 금세 없어져서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지요. 마찬가지로 내일이면 그 눈 위에 그려놓은 내 인생의 파노라마는 금새 묘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더 확연하고 영원할 족적을 내 인생의 눈길위에 그려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빠빠라기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망년회를 하면 됩니까? 해맞이를 하면 됩니까? 3일도 못가는 결심을 하면 됩니까? 진리이신 성경 고후5:17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야 진정한 새해입니다. 그 안에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기 때문이지요. 대망의 2010년! 영원한 족적을 새기는 진정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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