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 전 1월 13일 한국인 이주민이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디딘 날을 기려‘미주 한인의 날’이 제정됐다. 이날을 맞아 미국 전역의 한인 동포 밀집 지역들에서 각종 기념행사들이 개최됐다. 학교와 한인 단체들은 태극기 게양식을 하고 교계에서는 조찬 기도회, 감사예배, 찬양 축제, 축하 공연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렇게 미주 한인 사회는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미주한인의 날”을 축하하고 미국 내 한인들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덴버는 이런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지난 2005년 12월 미국 연방의회는 1월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지정했다. 1월 13일은 1903년 102명의 한인 이민자를 태운 여객선 갤릭 호가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날이다. 결의안 제출자인 캘리포니아 출신 공화당 에드로이스 의원은 “현재 미국에는 100만 이상의 한국계 미국인이 살고 있으며, 특히 캘리포니아는 이들 미주 한인의 기여로 더욱 풍요로워졌다”고 역설했었다. 이 법안이 통과될 당시 미주 중앙일보에 나왔던 기사가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남가주 한인사회의 경제규모가 소득기준으로 총 257억 달러인데, 이는 대구직할시의 1년 총 생산량보다 더 큰 규모라는 것이다. 에드로이스 의원의 말이 공치사가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법안이 양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통과됨에 따라, 그때부터 모든 미국인들이 이 날을 함께 기억하고 축하하게 되었다. 이는 미국에서 특정 소수계 이민을 기념일로 지정한 최초의 사례다. 수많은 소수 민족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 사회에서 한인 이민기념일이 최초로 제정된 것은 미국 속의 한인 이민자의 현주소를 말해주고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그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민자 사회로 발돋움하고 있는 증거라는 생각도 된다.

정치계를 둘러보면 보스턴시 시의원 샘 윤,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 시의원 패티 김, 시애틀 셔어라인 시의원 신디 류, 라카나다 교육위원에 입양아 출신 조엘 피터슨, 위싱턴 DC교육감 미셀 리, 최근 덴버를 방문한 오리건주 시의원 임용근씨 등 많은 한인 출신들이 자기 목소리와 의지로 미국 사회를 개혁해 나가고 있다. 문화 예술분야도 눈 여겨 볼만하다. 저녁밥을 먹고 나서 ABC-TV를 통해 샌드라 오가 출연하는 ‘그레이스 애나토미’를 시청하고, 스포츠 뉴스를 통해 박찬호와 추신수 선수가 나오는 야구경기를 보고, 신지애, 최나연, 박세리가 나오는 골프도 본다. 닌자 어쌔신의 비, 월마트에서도 볼 수 있는 영화 ‘지아이조’의 이병헌 캐릭터 장난감을 봐도 한류는 미국에도 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덴버와 상관없는 얘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대부분의 이곳 한인들이 자신의, 개인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한 명이 무슨 힘이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이는 일종의 책임회피성 사고이다. ‘미주 한인의 날’의 제정은 높아진 한국인의 위상을 반영한 쾌거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성되지 않은, 허물어지기 쉬운 모래성 같은 한인사회의 위상을 더욱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과 참여가 절실하다. ‘나’와 ‘너’가 모여 ‘우리’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좋은 기회가 바로 인구조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미국사회에서 한인사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인구조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다. 콜로라도 한인사회가 2만5천 명에서 많게는 3만 명 정도라고 말하지만 이번에 시작되는 센서스에서 고작 1만 명을 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모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미래 한인 사회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센서스는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선택의 일이 아니다.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센서스는 1790년부터 10년마다 있었다. 건국의 주역들이 헌법에 못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센서스에서 미국 총인구는 2억8142만1906명이었다. 올해 인구 조사국의 자동 인구시계가 가리키는 추정치는 3억831만3000명이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선거구를 나누고 각 주를 대표하는 연방 하원 의석 수와 선거인단 수를 재조정한다. 연방정부가 지방에 교부하는 연 4천억 달러 규모의 지원금을 나누는 기준도 된다. 이번 센서스를 위해 전국적으로 120만 명의 인력이 동원되고 140억 달러의 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인구조사국은 예상한다. 오는 3월부터 전 가구에 우편 설문지를 발송해 답변이 오지 않을 경우 조사요원이 가가호호 방문하게 된다. 답변에 불응하면 최고 100달러까지 벌금이 부과되고, 고의로 거짓 답을 쓰면 최고 500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참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인의 날을 굳이 정하지 않아도 항상 미국 내에서 영향력 있는 민족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이민 100년의 발걸음을 또다시 힘차게 시작해야 하는 지금, 우리 한인들의 머리‘수’가 더 높고 큰 발걸음을 만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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