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내내 한국에서는 대기업 임원이 기내에서 여성 승무원을 폭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포스코 에너지의 임원으로 밝혀진 이 남자는 빗발치는 비난 여론에 결국 회사를 사직했다.
언론에 알려진 그의 행동은 한마디로 진상이었다. 그는 인천발 LA행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옆 좌석에 승객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승무원에게 ‘자리가 비어있지 않다’며 욕설을 했다. 아침 메뉴에 죽이 없다는 이유로 불만을 나타냈고 ‘이 메뉴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거냐’며 짜증을 냈다. 이후 기내식 밥이 설 익었다는 이유로 교체를 요구했고 교체된 기내식 밥도 설 익었다는 이유로 식사를 거부했다. 식사를 거부하고 라면과 삼각김밥을 주문한 A씨는 ‘라면이 잘 익지 않았다’, ‘라면이 짜다’는 등의 이유로 수 차례 서비스를 다시 요구했다. ‘기내가 너무 덥다, 에어컨이 고장난 것이 아니냐, 서울의 건물 실내 온도는 19도 인데 비행기 온도가 24도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면세품 구입 과정에서도 불만을 토로하다 급기야 해당 승무원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잡지책으로 승무원의 얼굴을 때렸다. 폭행을 당한 승무원은 미국 공항에 도착해 현지 경찰에게 A씨의 폭행사실을 알렸고 미 연방수사국 요원은 A씨에게 현지에서 조사를 받거나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결국 A씨는 미국 입국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 정도 수준이면 거의 행패다. 차라리 개인 전용기를 준비해 개인 요리사와 하인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비행기 기내식이 아무리 잘 나온다고 해도 집에서 만든 것과는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이런 것쯤을 이해 못하고 라면이 짜다느니 덜 익었다느니 생트집을 잡으며 세 번씩이나 라면을 다시 끓여오게 하고, 급기야 여승무원의 얼굴을 잡지로 때린 사람이 한국 굴지 기업의 임원이라니, 이 사태로 인해 한국은 대기업의 임원뿐 아니라 전 국민의 윤리의식에 비상등을 켜야 할 것 같다.
필자의 친구들 중 3명이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비행기 승무원 시험을 친 적이 있다. 키가 작은 한 친구를 제외하고 두 명은 합격했다. 키는 162cm 이상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그래도 165 정도는 되야 했고, 회사측은 나이제한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합격자의 대부분은 20대의 젊은 여성들이다. 당시 학력도 전문대 졸업 이상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쟁쟁한 학벌의 소유자들이었다. 정리를 해보면 스튜디어스가 되려면 똑똑하고 외모 출중한 젊은 여성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승무원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다. 서비스도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항공업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승무원들에게 무릎을 꿇고 기내 물품 구입 주문을 받으라는 등 무한 서비스 제공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보면 승무원, 특히 여승무원들이 과도하게 친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짓궂거나 술 취한 승객이 수작을 걸거나 희롱을 해도 무한한 인내력으로 견뎌내곤 한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 일하는 승무원은 예쁘지도, 그리 친절하지도 않다. 40-50대의 나이 많은 승무원이 흔하고, 심지어 뚱뚱하기까지 해, 한국 승무원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난다. 또, 서비스를 비교해보면 정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승무원의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미국 승객은 거의 없다. 이는 승무원과 승객은 동급의 인간이고, 승무원은 일종의 직업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곳 승무원은 승객이 상식에서 벗어난 요구를 했을 경우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승객에게 대들었을 경우 회사를 그만 둘 각오를 먼저 해야 한다.

   과도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잘못된 의무감은 곧바로 고객들에게 ‘군림할 수 있다’는 착각을 들게 한다. 한국은 서비스업에 대한 생각이 유별나다. 한겨울에 한국의 백화점에 가보면 꽁꽁 얼어붙은 땅 위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주차안내를 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을 볼 수 있다. 팔다리를 폈다 굽혔다 하면서 손을 올려 딸랑이 손짓을 하는 이들을 보면 마치 불쌍한 로봇 같아 보인다. 이렇게 힘든 일이지만 하루 10시간 근무에 월 150만원도 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상당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예뻐야만 채용된다. 필자는 아직까지 이곳 콜로라도에 있는 백화점에서 유니폼을 입고 하루 종일 불편한 미소를 지어야 하는 주차장 안내 아가씨나 엘리베이터 걸을 본적이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에서처럼 사람의 의중을 늘 알기는 힘들다. 미국내 한 기업 경영인이 쓴 <CEO가 명심해야 할 매니지먼트 룰>에는 ‘웨이터의 법칙’이란 게 있다. 식당 종업원을 어떻게 상대하는지를 관찰해 보면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웨이터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난 이 레스토랑을 사버리고 널 잘라버릴 수 있어”라든지,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생각을 한다. 불행히도 이런 발언은 그 사람의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나타낼 뿐이다. 이 웨이터의 법칙은 무례한 상대방과 비즈니스나 데이트를 해 봤자 결과는 빤하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만약 승무원을 폭행한 그 대기업의 임원이 외국 비행기를 탔어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이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는 무차별 공격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이곳 콜로라도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 레스토랑에서는 음식이 늦게 나와도, 주문이 바뀌어도, 물 한잔 가져다 주지 않아도 찍소리 못하면서,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에서는 온갖 트집을 잡으며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 여전히 존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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