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민족, 사회와 교회, 일터에서는 물론 지극히 작은 가정에서도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각자가 속한 곳에서의 지도자는 대체로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체의 안전과 유익, 명예, 권세, 힘을 추구하지만, 소수를 등한시 하는 경우가 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함부로 대할 수도 있고, 소수에게 손해나 희생을 강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 전 수상이 지난 4월 8일에 87세의 일기로 사망했는데, 과거 11년간 수상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쌓았다며 여기저기서 칭찬이 대단하다.  지난 400년의 기간동안 영국의 수상들 가운데 유일한 여성 수상이었던 그녀는 존경 대상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대처 수상은 다수를 위해서는 내외적으로 무고한 소수를 희생시키는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이라크와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대처는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테러와 전쟁도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들의 안전은 상관치 않고 무작정 이라크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했다.  대처의 이와 같은 요청의 저변에는 선과 정의라는 표면적인 의도 뿐만 아니라, 미국보다 훨씬 중동 지역과 가까이에 위치한 영국이 혹시라도 이라크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봐 불안하고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불안하고 두렵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치거나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고 진실하고 신실한 의도가 아니다.  불의한 나라와 그러한 사람들의 만행을 물리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지만, 대대적이고 과도한 전쟁을 일으켜, 연약하고 선하고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들과 무고한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을 죽게 하고 기독교와 교회와 복음이 핍박을 받으며 사라지게 하는 것은 정의와 의와 진리를 거역하는 것임을 주의하여야 한다.
오늘날에도 대부분 지도자들이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하여 소수를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본능과 인격과 신앙과 영혼과 나라의 기초에 금이 가게 하고 구멍이 나게 하며 무너지게 하는 것이다.  진정한 걸림돌과 대적과 원수는 육안에 보이지 않는다.  강한 자와 악한 자는 훗날 또 다른 강자와 악인에게 불의와 죄악을 당하게 되는 것을 진리에서 발견할 수가 있고 인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란 조지 워싱턴과 같이 선과 공의와 정의로운 의도를 가지고 약자와 선한 편에 서서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걸고 책임감을 다하는 사람을 말한다.
아브라함 링컨 같은 사람은 소수이며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던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미국을 올바르게 발전시키기 위해 약자와 선한 자 편에 서서 위기를 자처하였다.  그가 정말 장사꾼과 같은 정치꾼이었다면, 미 남부의 비위를 들어주면서 미국의 분열과 전쟁을 막고 편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적당한 시기에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위험한 전쟁터에 나가서 군인들을 격려했고, 기도를 할 때도 북부가 승리하도록 빌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오늘날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부분적으로나 닮았던 그들에게서 교훈을 얻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많이 맺으며 주님의 제자로 한걸음씩 온전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 링컨은 평범한 시민이었을 때에도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나 읽거나 혹은 전하는 사람은 누구나 벌떼와 싸우듯 열심히 실천하여야 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욕심이나 불안을 믿음과 불굴의 의지와 희생정신으로 능히 극복하고 항상 공의롭게 처신하면서 영육적으로 전화위복이 이루어지기를 주님께서도 기대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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