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구촌은 온통 아이티 구호작업으로 난리다. 대지진 참사로 고통 받고 있는 아이티는 구조작업도 어렵고 정확한 피해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아이티 적십자사는 지진 사망자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물론 복구 시간도 상당히 걸릴 것이다.

몇 일 전 뉴스위크에서는 지질조사국 통계분석 결과를 근거로 1900년 이후 역대 최대의 희생자를 낳은 10대 지진 순위를 공개했다. 내용에는 아이티 지진 사망자가 5만 명일 경우 20세기 이후 역대 최악의 지진 순위 10위에 오를 것이라고 한다. 1900년 이후 최악의 지진으로는 1976년 7월 25만5천여 명이 숨진 중국 탕산 대지진이 꼽혔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과 쓰나미는 희생자가 22만7898명에 이르러 2위에 올랐다. 20만 명이 숨진 1920년 12월 중국 하이위안 대지진, 일제 당시 한국인에 대한 대학살 만행의 빌미가 됐던 1923년 9월 관동 대지진이 사망자 14만 명으로 4위에 기록됐다. 그 외에 최악의 지진은 1948년 10월 11만 명이 사망한 투르크메니스탄 대지진, 8만 여명이 사망한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지진과 2005년 10월 북부 파키스탄 지진, 7만 여명이 사망한 1908년 12월 이탈리아 메시나 지진과 1970년 5월 페루 침보테 지진, 5만 여명이 사망한 1990년 6월 서부 이란 지진 등이 순위에 포함되어 있다. 1900년 이전을 포함하면 역대 최악은 중국 명나라 때인 1556년의 산시 대지진으로 83만 명이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너무 많은 인명 피해로 사망자 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어, 단지 추정할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서 재앙으로 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재앙이 닥쳤을 때 지구촌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지진, 홍수, 가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텔레비전 뉴스로만 듣다가 직접 가서 보게 된 것은 일본 고베 지진 때였다. 1995년 1월 16일 새벽, 일본의 도심부를 직격한 최초의 대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는 고베 지진은 그 주변지역에 전례가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주었다. 불과 20초간의 강렬한 흔들림은 고베시에서만 5천여 명의 고귀한 생명을 빼앗았다. 당시 한국에서도 난리가 났었다. 한국 교민이 많이 살고 있고, 또한 지리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였기에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필자는 1월말 경 한국 대학생 걸스카우트 연맹 대원들 20명을 이끌고 고베로 갔다. 걸스카우트이지만 대부분이 남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어 짐을 옮기기는 쉬웠다. 쌀을 가져가고 싶었지만 너무 무거운 탓에 컵라면과 과자, 양말, 수건 등 다소 무게가 덜 나가는 구호품들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고베시까지 들어가는 교통 수단이 마비되어 인근 지역까지 기차를 타고, 그 다음부터는 임시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타고 교민 대표를 만났다. 비록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반갑고 서러워 얼싸안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15여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나는 것들이 있다. 기찻길 양 옆으로 나란히 서있었던 가옥들은 마치 큰 로보트의 발에 뭉개진 것처럼 힘없이 납작하게 주저 앉아 있었고, 고가 도로는 놀이공원에 있는 롤러코스터처럼 비틀어져 있었고, 30층이 넘는 빌딩들은 어이없이 쓰러져 있었다. 시내 전 지역에 전화 불통, 개스 단전, 단수, 잠잘 곳도 마땅치 않는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그 끔찍한 현장에 서서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소름이 돋았다. 사실 필자는 처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고베시에 구호대를 이끌고 가는 것을 회피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대원을 이끌 수 없게 된 대장의 간곡한 부탁으로 할 수 없이 가게 된 험한 길이었지만 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새우깡 한 봉지에 너무 감사해 하고, 라면 한 봉지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들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았다.

어제 뉴스에서는 미국 가정에서 아이티의 고아들 50여명을 입양하는 장면이 보도 됐다. 참으로 생소했다. 자기 일이 아니면 후원도 잘 하지 않는 우리인데 입양까지는 절대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티에서는 대지진 이후 약탈과 범죄가 난무한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짓을 하는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 지진 때문에 목숨 잃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족과 어린이들만을 생각하자.“1달러면 아이티의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포커스 신문사에서는 이번 주부터 2주 동안 아이티 국민 돕기 캠페인을 벌여 성금을 모으기로 했다. 굳이 포커스 신문사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더 좋다. 하지만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해 포커스 신문사가 그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동포들의 많은 참여가 있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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